지만원이 또 하나 사고쳤구만…

우리는 흔히 말한다. 듣기 싫은 소리도 때로는 들어가면서 냉정하게 반성, 혹은 그렇지 않을 경우 역시 냉정하게 규명하려 시도해야지, 안 그러면 양쪽 귀를 모두 닫아 걸고 자기 목소리만 내는 부류들1과 차별화할 수 없다고 말이다.

그러나, 이는 하나만 알고 둘은 모르는 소리라 말해주고 싶다.

왜냐고? 상대방 자체가 이미 양쪽 귀를 틀어막고 자기 목소리만 내는 사람인데 이런 사람에게 과연 제대로 된 규명이 통할 것이라 판단하는가? 앞서의 글에서도 잠깐 풍자했지만, 한승조, 지만원, 조갑제, 김완섭, 오선화 같은 부류의 인간들은 논쟁(論爭)2은 통할지 모르지만 토론(討論)은 절대 통하지 않을 인간들이다. TV를 봐도 확인할 수 있지 않은가? 또한 이런 부류의 인간들은 끊임 없이 보편타당한 것들과의 부딪힘을 통해 사회 전반의 관심을 끌려고 하며 이 와중에 개인의 이익도 극대화하려 한다.

그렇다면, 어떻게 해야 이런 부류의 인간들이 없어질 것인가라는 질문을 안할 수 없고 그 질문에는 개인적으로 이렇게 답하고 싶다.

이런 부류의 인간들이 최근 더욱 목소리를 높이는 이유에 대해서 한 번 생각해보면 쉽게 답이 나오지 않을까 싶다. 즉, 그 동안 이런 년놈들은 사회 전반적인 미성숙3을 틈타 아무런 규제 없이, 가끔은 깨어 있는 지식인처럼 몇 마디 사회에 던져주면서 아주 아주 편한 삶을 살아왔다. 그러다 6.29사태4 이후 사회 전체가 깨어나기 시작하면서 지네들의 지지 기반도 이탈(사실, 이탈이 아니라 제자리를 찾아가는 거지만)하기 시작하자 스스로의 존립 기반에 대해 다시 한 번 돌아보게 됐고 그 결론으로 이대로 있다가는 존립 기반 자체가 무너질 것 같다라는 위기감을 느낄 수밖에 없었을 것이다. 따라서 이를 방지하고 지지층의 결속을 다지기 위해 과거보다 좀 더 자극적인 방법으로 목소리를 낼 수밖에 없었던 것인데, 이것이 바로 자충수(自充手)가 되어 그 동안 잘 위장해왔던 건전 수구보수라는 탈을 궁극적으로 스스로 깨버리게 되는 부메랑을 맞게 된 것이다.

바로 여기에 해답이 숨어 있다고 본다. 즉, 우리 사회가 지금까지 해왔던 것처럼 쉬지 않고 앞으로도 시나브로 깨어나간다면, 결국 이러한 부류의 인간들은 자멸(自滅)할 수밖에 없다는 해답 말이다.

지만원!

남에 눈에 눈물나게 하면, 자기 눈에는 피눈물이 난다는 사실을 (뭐, 말해봐야 씨알도 안먹히겠지만) 말해주고 싶다.


“위안부 출신 할머니 가짜일수도”
지만원씨 “위안부 중 80% 몸팔아 생계유지 창녀” 또 망언 파문

군사평론가인 지만원씨가 “최근 TV에서 보이는 위안부 할머니들이 지나치게 건강하다”면서 매주 수요집회에 나가고 있는 할머니들이 진짜 위안부가 아닐 가능성을 제기해 파문이 일 것으로 보인다.

또 “종군위안부 가운데 ‘진짜 일본군위안부’를 가려내는 일이 얼머나 어렵겠느냐”면서 “(종군위안부들이) 대개는 ‘노인이 돼서 기억은 잘 나지 않지만 당한 건 사실이다’라며 우기는 경우가 많다”고 주장해 논란이 예고된다.

그는 13일 자신의 홈페이지에 올린 ‘위안부 문제를 해부한다(상)’라는 제목의 글에서 이같이 밝히고 “위안부는 엄격히 3가지로 구분돼 있지만 필자를 포함해 한국인들은 대부분 이를 구별하지 못해 왔다”고 말했다.

그는 위안부에는 ▲일본인들의 비위를 건드리거나 일본에 반항하던 집안의 규수들인 ‘일본군위안부’, ▲살림이 극히 어려워 스스로 군표를 받고 몸을 팔아 생계를 유지한 창녀인 ‘종군위안부’, ▲15-40대에 이르는 근로여성으로 돈을 받고 간호사, 군수공장 등에서 일한 여성인 ‘정신대’가 있었다고 주장했다.

그는 “세 부류 중에서 문제가 되는 것은 주로 ‘일본군위안부’들이다. 이 분야에 관심이 있는 사람들의 말에 의하면 ‘일본군위안부’는 20%, ‘종군위안부’는 80%를 차지한다고 한다”면서 위안부 할머니의 80%를 몸을 팔아 생계를 유지한 ‘창녀’로 매도했다.

그는 특히 “진짜 위안부 할머니들은 정신적 고통과 성병 및 기타 질병으로 건강이 너무 상해 거동이 불편하다고 한다. 그런데 최근 TV에서 보여 지는 위안부 할머니들 중에는 연세가 그렇게까지는 많아 보이지도 않고, 건강도 매우 좋아 보이며, 목소리에도 활기가 차 있는 분들이 있다”면서 매주 수요집회에 참석하고 있는 위안부 할머니들이 진짜 위안부가 아닐 가능성이 있다고 주장했다.

다음은 지만원씨의 글 전문.

2005.4.12. 밤 9시 뉴스에 “위안부 할머니는 북한공작원”이라는 뉴스가 나왔고, 익일 아침 신문에도 같은 내용들이 보도됐다. 이를 본 가족이 욕을 했다. “일본 놈들, 저런 엉뚱한 소리를 하니까 UN 상임이사국에서 떨어지지!”

일본은 1910년 한국을 합방했다. 그로부터 32년 후인 1941년 12월 7일. 일본은 진주만을 기습공격 함으로서 미국을 상대로 태평양전쟁을 일으켰다. 32년동안에는 위안부 문제가 전혀 없었던 것이다. 32년간에는 왜 위안부문제가 없었는가?

중국, 인도, 아프리카, 남미. 아시아 등 세계의 수많은 나라들이 유럽강국들과 일본의 식민지가 됐었다. 선의였느냐, 악의였느냐에 대해 따지는 것은 뒤로 미루기로 하고, 결과만을 가지고 본다면 한국은 다른 여타의 식민지들보다는 사정이 좋은 편이다.

■ 일본은 조선 여인들을 어떻게 대우했는가?

아프리카를 식민지로 가졌던 나라들은 흑인을 노예로 잡아다가 아들 딸 부모를 떼어서 팔았고, 소나 말처럼 채찍으로 때려가면서 부렸다.

인도와 중국은 아편쟁이들이 되었다. 이처럼 여타의 식민지들은 착취와 약탈의 대상이었지만, 한국만은 일본인이 건너와 천년만년 살고 싶어 했던 땅이라 애착을 가지고 가꾸었다고 보는 견해가 많다.

한국에는 지진도 없고, 산수가 수려하고, 대륙이었기 때문이다. 그래서 일본인들은 한국을 일본만큼 가꾸고 한국인들 역시 일본인들과 동등한 대우(내선일체)를 하는 것을 정책으로 삼았었다.

머리 좋은 사람들을 사범학교에 보냈고, 졸업을 하면 한국에 있는 학교에 배치했다. 한국에 일본인 전용학교들, 한국인 전용학교들을 세웠으며 도로, 철로, 항만, 발전, 공장, 건물 등 많은 자본을 투자했다.

패러다임 측면에서 보면 다른 여타의 식민지들은 착취의 대상이었지만 한국만큼은 가꿈의 대상이었다는 것이 그 시대를 아는 분들의 일반적인 견해다. 이는 당시의 경제를 연구한 젊은 학자들에게도 형성돼 있는 견해인 듯 하다.

여성에 대한 대우에서도 마찬가지였다고 한다. 우리는 5,000년 역사를 자랑하지만 그 역사는 침략 받고 고통 받은 역사들로 채워져 있다. 900여회의 침략을 당했고, 대부분의 침략을 중국으로부터 당했다.

중국이 우리를 침략하면 예외 없이 부녀자들을 겁탈하고, 여성들을 중국으로 끌고 갔다. 나이가 들면 퇴물이라며 버렸다. 버림 받은 한 많은 여인들이 그래도 내 땅이라고 조선을 찾으면 조선인들은 이들을 화냥년이라고 손가락질을 했다. 원래는 ‘환향녀’라 한다. 그러나 일본인들은 중국인들처럼 한국여성을 함부로 다루지 않았다 한다.

■ 위안부의 종류

“위안부”, “정신대” 이런 말들이 나올 때마다 한국인들은 흥분부터 한다.

지난 번 서울대 경제학부 이영훈 교수가 “위안부는 양 색시와 같다”라는 말을 했다가 혼이 났고, 지금도 많이 시달리는 모양이다. 그의 글 역시 거두절미한 언론의 희생물이었다.

여배우 이승연이 위안부 역할을 하느라 누드 사진을 찍었다해서 벼락 맞듯이 당했다. 그래서 한국에서는 위안부 문제라면 아예 손사래를 치며 멀리 하려 한다.

위안부 문제 역시 예전의 5.18처럼 금단의 구역이 되어 있는 것이다. 그런 금단의 장막에 가려져 있는 곳일수록 문제가 많다는 게 필자의 지론이다.

필자가 파악한 바로는 위안부에는 엄격히 3가지로 구분돼 있지만 필자를 포함해 한국인들은 대부분 이를 구별하지 못해 왔다.

(1) “일본군위안부”: 일본인들의 비위를 건드리거나 일본에 반항하던 집안의 규수들, 시집을 미처 가지 않은 규수들이다. 밥을 짓다가, 김을 매다가, 빨래를 하다가 또는 학급에서 공부를 하다가 잡혀간 규수들이다. 이 여인들이야 말로 가장 억울하게 잡혀가 일본군인들에게 윤간을 당한 여인들이며, 그래서 일본을 증오하는 마음이 뼈에 사무쳐 있다. 일본의 통계나 이 분야에 관심이 있는 사람들의 말에 의하면 “일본군위안부”는 20%, “종군위안부”는 80%를 차지한다고 한다.

(2) “종군위안부”: 이들은 살림이 극히 어려워 스스로 군표를 받고 몸을 팔아 생계를 유지한 창녀라 한다. 서울대 이영훈 교수가 했던 말은 바로 이런 측면을 말한 듯 하다.

(3) “정신대”(挺身隊): 이는 ‘여성근로정신대’의 준말로, 15-40대에 이르는 근로여성으로 돈을 받고 간호사, 군수공장 등에서 일한 여성들이다. 끝까지 정조를 지킨 사람, 때에 따라 몸을 팔기도 한 사람, 또는 ‘종군위안부’로 변신한 사람도 있었다 한다.

이 세 부류 중에서 문제가 되는 것은 주로 “일본군위안부”들이다.

■ 일본군 위안부는 지금 몇 살인가?

1944년이 아마도 마지막 “일본군위안부”가 끌려갔던 때일 것이다.

당시에 15세 이상의 여성이었다면 지금은 최소한78세 이상이 되어야 한다. 일본군인들에게 5-6년간 몸을 바치게 했다면 78세 이상의 고령에다 몸도 건강하지 못하다는 게 진짜 할머니의 증언이다.

진짜 위안부 할머니들은 정신적 고통과 성병 및 기타 질병으로 건강이 너무 상해 거동이 불편하다고 한다. 그런데 최근 TV에서 보여 지는 위안부 할머니들 중에는 연세가 그렇게까지는 많아 보이지도 않고, 건강도 매우 좋아 보이며, 목소리에도 활기가 차 있는 분들이 있다.

한승조 교수가 쓴 위안부(정론지)

“태평양전쟁 중에 한국인 여성이 挺身隊(정신대)로 끌려가서 일본군의 성적인 위안물로 이용되었다 하여 일본의 사죄와 배상을 계속 요구하는 모습은 일본을 나락에 밀어 떨어뜨리려다가 자신들이 먼저 떨어지는 ‘사악함과 어리석음’의 대표적인 사례가 아닐까? . . .

일본이 한국여성을 전쟁 중에 그렇게 이용했다는 것도 전쟁 중의 일시적이면서도 예외인 현상이었던 것으로 알고 있다. 만일 그런 정책의 희생자가 수천, 수만 명이 된다면 六何原則에 따르는 명백한 증거를 찾아내어서 정식으로 거론되었어야 했다.

그러나 그리 많았던 수도 아니었는데 그런 봉변을 당했다고 진술하는 몇 명 안 되는 소수의 노파를 끌고 다니면서 과장된 사실을 믿게 해줄 만한 명백한 증거도 제시하지 못하면서 거듭 배상금을 요구하며, 그나마 이미 받은 것 이외에 더 많은 돈을 요구하면서 몇 십 년 동안 물고 늘어져 왔다는 것은 고상한 민족의 행동거지로 볼 수가 없는 것이 아닌지.

그런데 한국의 신문과 방송은 어쩌자고 이런 노파들의 행동이나 반일감정을 자극하는 기사를 만들고 열심이 보도해 대는 것인지. 애초에 性의 문제는 돈으로 환산될 수가 없는 것인데 왜 돈의 문제와 결부시켜서 자기 망신을 계속하는 것인지? 이런 치사하고 못난 짓은 하면서 어떻게 위대한 민족임을 내세울 수 있겠는가?”

6하 원칙에 의해 인정받은 “일본군위안부”는 누구누구인가?

2004.11.29. 일본 대법원에서 6하 윈칙에 따라 확실한 “일본군위안부”였다고 인정받은 할머니가 있다. 현재 82세다.

이 할머니가 인정하는 일본군위안부 할머니는 33명이며, 이들 중에는 일본대사관에 나가 시위를 하는 할머니가 단 한명도 없다.

그렇다면 스스로를 위안부였다고 말하는 할머니들에 대해서는 그 진위 여부를 누가 어떻게 증명할 것인가? 요사이 TV에 자주 나오는 할머니의 경우에는 일본 유관단체가 “가짜”라며 보상금 지불 마저 거절한 바 있다 한다. 일본 기자 4명에게 인터뷰를 했는데 네 번 다 말이 틀리다는 것이었다.

베트남 전은 1965년부터 시작됐다. 당시 병사들은 지금 60세 전후가 됐다. 고엽제 등 보상 받을 일이 생기면 “내가 월남전에 活徨杉蔑굔?사실을 증명해야 한다. 그런데 기록이 없다. 증명하는 방법은 월남에서 찍은 사진들이다. 사진이 없으면 당시의 지휘관들과 동료들을 찾아 증언을 하는 것이다.

1980년 광주사태가 발생했다. 당시 누가 민주화투사였느냐, 누가 시위에서 피해를 입었느냐를 조사하는 데에도 별 희한한 속임수들이 많았다. 서로가 서로를 증언해주는 일들도 허다했다.

당시에는 주유소에 가면 휘발유 통을 마구 주었다 한다. 용달차 운전자가 휘발유를 드럼 채 얻어가는 재미에 3차례나 드럼통을 가득 실어 집으로 날랐다. 4번째 가다가 총을 맞았는데 민주화투사로 보상을 받는다 한다. 이는 광주 교도소에서 들은 말이다. 이런 유의 잡다한 사례들은 광주인들 스스로도 부끄러워하는 일이다.

그런데! 60여년이 지난 지금 가짜 위안부로부터 “진짜 일본군위안부”를 가려내는 일이 얼마나 어렵겠는가? 대개는 “노인이 돼서 기억은 잘 나지 않지만 당한 건 사실이다”라며 우기는 경우가 많다 한다.

1992년부터 매주 수요일 낮 12:00-13:00까지 일본 대사관 앞에서는 3명에서 많게는 6명 정도의 할머니들이 가슴 앞에 노란 색 천을 두르고 시위를 한다. “진상을 규명하라” “사죄하라” “배상하라” “역사교과서에 진실을 실어라” “전범자를 처벌하라”. 벌써 600여회를 훨씬 넘겼다 한다.

진짜 “일본군위안부”나 “종군위안부”였던 할머니들은 창피해서 사람들과 접촉하지 않는 후미진 곳에 산다고 한다. 일본 법정에서 진짜 “일본군위안부”로 증명된 할머니의 말씀으로는 진짜 할머니들은 TV에 얼굴 찍히기를 싫어하여 단 한번도 노출된 적이 없다고 한다.

최근 TV에 얼굴을 비추고 있는 할머니들 중에는 중국에서 온 5명 정도의 할머니들도 있다한다. 이들은 일본 대사관 앞에 나오는 대가로 하루에 몇 만원씩의 일당을 받는다고 한다.

중국에서 온 할머니들은 경기도 광주에 있는 나눔의 집에 수용돼 있다고 한다. 그러나 진짜로 알려진 33명의 할머니들은 나눔의집이 싫다며 나와서 산다고 한다.

일본은 1965년 한일협정에 구애됨 없이 보상을 하겠다고 한다. 그러나 위 3개 카테고리 중에 어느 카테고리에 속하는지 분명히 구분하여 보상을 청구하면 받아주겠다고 한다.

모두가 “일본군위안부”라는 가장 유리한 카테고리라고 주장하는 것은 믿기 어렵다고 한다. 현재 “일본군위안부”라고 서로 믿는 할머니 수는 33인이며, 이들은 “세계평화 무궁화회 33인회”를 구성하고 있다.

한국아이닷컴 뉴스부 reporter@hankooki.com

Footnotes

  1. 단적인 예로 일본의 우경화를 추구하는 ‘새역모’같은 우익들을 꼽을 수 있다.
  2. 사람들이 종종 헷갈려하는 부분인데, 토론(討論)은 서로 상대방의 의견을 충분히 들을 준비가 되어 있는 상태에서 누가 더 옳은 쪽에 가까운지를 규명하는 거지만 논쟁(論爭)은 상대방의 의견을 들을 준비를 아예 하지 않은 채 말 그대로 서로의 주장만을 내세우는, 한마디로 평행선의 극치를 보여주는 것이다. 이 점이 토론(討論)과 논쟁(論爭)의 가장 큰 차이다.
  3. 국가라는, 개념 상 최고 위치에 있는 조직의 운영을 위해 이런 년놈들의 Free Riding을 묵인할 수밖에 없었던 점, 경제 개발이라는 사회 전체의 Agenda에 휩쓸려 어쩔 수 없이 통제된 역사를 보냈다는 점, 그러면서 국민 대다수를 지네들이 다루기 편한 방향으로 몰아왔고 일정 부분 들어 맞은 점 등등 이것들 말고도 더 있지만, 대부분 크게 봤을 때 이 세 부분 안에 들어간다고 보기 때문에 생략한다.
  4. 어디까지나 본인 개인적인 판단이다.

7 thoughts on “지만원이 또 하나 사고쳤구만…”

  1. 부메랑이라는 표현이 정말 적절하신듯 합니다. 안타까운것은 저런 ‘것’들은 부메랑을 제대로 얻어 맞고도 씩씩하게 계속 짖어댄다는 것입니다. 어쩌면, 그 ‘것’들은 맞는것 자체를 즐기는건지도 모르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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