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간!
먼저 네이버 국어사전을 통해 그 의미부터 한 번 보자.
1.사람. 인류(人類).
2.사람의 됨됨이.
¶그는 인간이 됐어.
3.사람이 사는 세상. 세간(世間).
¶환웅이 인간에 내려와서 백성을 다스리다.
4.‘마음에 마땅치 않은 사람’을 얕잡아 이르는 말.
¶저 인간의 말은 아무도 믿지 않는다.
엠파스 국어사전도 같이 한 번 보자.
1.사람. 인류(人類).
2.사람의 됨됨이.
¶그는 인간이 됐어.
3.사람이 사는 세상. 세간(世間).
¶환웅이 인간에 내려와서 백성을 다스리다.
4.‘마음에 마땅치 않은 사람’을 얕잡아 이르는 말.
¶저 인간의 말은 아무도 믿지 않는다.
이왕 본 거 야후 국어사전 올인올 통합사전도 보자.
[人間] <명사> ①사람①. ¶~의 존엄성. ~의 본성은 착한 것이라고도 하고 악한 것이라고도 한다.
②사람이 사는 세상. ¶경은 수고를 아끼지 말고 다시 토 처사와 함께 ~에 나가라 하니. <별주부전>.
여기까지 온 거 네이트 국어사전도 마지막으로 보자.
1.사람. 인류(人類).
2.사람의 됨됨이.
그는 인간이 됐어.
3.사람이 사는 세상. 세간(世間).
환웅이 인간에 내려와서 백성을 다스리다.
4.‘마음에 마땅치 않은 사람’을 얕잡아 이르는 말.
저 인간의 말은 아무도 믿지 않는다.
보면 알겠지만, 야후올인올 통합사전을 빼고는 네이버와 엠파스가 같고 네이트는 토씨 하나(¶) 틀린 정도의 해석이다. 즉, 대동소이하다. ‘인간(人間)’을 사람으로 보기도 하지만, 더 넓게는 사람이 사는 세상으로 보기도 한다는 의미인데…
여기서 드는 의문!!! ‘인간(人間)’이란 말을 한문 그대로 직역하면, ‘사람 사이’가 되는데, 왜 인간의 ‘간(間)’을 ‘사이 간(間)‘으로 했을까?
저 ‘사이’의 의미가 우리가 알고 있는 의미 중에 하나인 ‘틈(균열의 의미인 crevice, 이미 갈라진 틈인 crack, 단절의 의미인 gap, 벌어진 공간의 의미인 space, 혹은 물리적 단절이나 간격을 의미하는 interval/distance)’인가? 아니면 말 그대로 사람과 사람 사이의 ‘관계(relation)’를 의미하는 것인가? 그것도 아니면 둘 다인가?
어떻게 보면 너무 뻔한 질문을 한 것일 수도 있다. 왜냐면 ‘사이’의 의미가 위에서 언급한 둘 다의 의미라는 것을 대부분의 사람들이 알고 있을테니까.
그러나, 여기서 다시 한 번 언급했던 것은 ‘사이’의 의미가 둘 다이기 때문에 사람과 사람 사이가 어려운 것이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들어서다. ‘사이’로 인해 때로는 사람과 사람이 ‘단절’되기도 하고 ‘사이’로 인해 사람과 사람이 ‘연결’되기도 한다. 그래서 수 많은 관계가 형성된다. 부모와 자식 사이, 부부 사이, 연인 사이, 형제와 자매 사이, 친구 사이, 선후배 사이, 사회적 인연을 통한 사이, 그 외 모든 기타 사이 등.
그 수 많은 사이 중 우리네 부모님 사이, 즉 남편과 아내 사이를 보자.(물론, 별 탈 없이 자식 키운 후 노후를 맞이하신 분들에 한해서다.)1 보면, 당신들께서는 어떻게 수십년을 남편과 아내 사이를 유지할 수 있었을까라는 의문을 가지게 된다. 그 분들 사이에서는 한 쪽의 실수로 ‘단절’ 직전까지 갔던 위기가 분명 없지 않았을텐데, 과연 그 위기를 어떻게 넘기셨을까? 자식 키우는데 있어 아주 별 탈이 없지는 않으셨던 내 부모님도, 내 기억으로는 두 어번의 아주 심각한 위기가 있었는데 말이다.
사람은 실수로 인해서 큰다고들 한다.2 ‘단절’ 직전까지 갔을 정도면, 상대방의 실수에 대해 이미 한 쪽의 판단이 굳어진 상황이었을텐데 그 위기를 넘기고 아직까지 ‘사이’를 유지하면서 나와는 부모와 자식 사이를 유지하고 계신다는 것은, 그 당시 한 쪽이 실수하여 ‘단절’ 직전까지 갔을 때에도 다른 한 쪽이 ‘단절’을 감행하지 않았다는 의미로밖에 해석이 안된다. 이 해석이 맞다면, ‘단절’을 감행하지 않고 ‘연결’을 택한 쪽은 상대방의 무엇을 보고 ‘단절’을 행하지 않았나라는 의문에 봉착하게 된다. ‘단절’ 직전까지 갈 정도면, 둘 사이의 신뢰가 상당히 훼손되었을 터인데 말이다. 신뢰가 훼손되었으니 상대에 대한 ‘확신‘도 없었을 것은 분명할 터이고.
문득, 우리네 부모님 세대들은 그러한 위기를 어떻게 지혜롭게3 극복하셨는지 진정으로 궁금하다. 정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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만남은 신의 몫이지만, 이후는 사람의 몫입니다.
맞지여…이후는 사람의 몫인데, 사람의 몫을 어떻게 처리하느냐가 중요하다는 의미로 이 글을 쓰려고 했던 것이고 처리 와중에 양 당사자가 어떠한 모습을 보이느냐가 포인트라고 생각한거져…
연결을 끊어야 하는 능동자와 단절을 겪게 되는 수동자는 어느 한쪽이 능동이라고 말할 수 없는 여러 가지 원인들을 갖고 있습니다. 그 원인이 누구에게서 비롯되었는지, 그리고 그 원인으로 인한 문제를 해결하는 방법, 앞으로 그러한 일들이 다시는 발생하지 않게 할 수 있는 방법들을 잘 아는 것이 됨됨이가 된 인간이겠지요.
>> 연결을 끊어야 하는 능동자와 단절을 겪게 되는 수동자는 어느 한쪽이 능동이라고 말할 수 없는 여러 가지 원인들을 갖고 있습니다.
맞습니다. 여러 가지 원인들을 가지고 있지요. 그러나 그 원인들을 상대방과의 공존과 공유 속에서 바라보는 모습이 아니라 일방적으로 상대방은 그럴 것이기 때문에 연결의 단절만이 필요할 뿐이다라고 바라보는 상황에서는 여러 가지 원인 자체가 성립이 되지 않습니다. 물론 기본적으로 상대방이 갖춰야 할 것이 있다면, 그 갖춰나가는 과정도 확인이 필요하다고 생각하구요. 그랬기 때문에 앞서 주석 3번에서 언급한 것처럼 지나고 보니 연결의 단절 보다는 그렇지 않았던 것이 나았다고 확인되는 것이 아닐까요?
>> …됨됨이가 된 인간
됨됨이를 갖추기 위해서 노력하는 과정의 확인도 없이 어느 한 순간, 갑자기 판단하여 ‘어! 당신 많이 바뀌었네’라고 인지한다는 것은 앞서의 글에서 언급한 것처럼 ‘남편과 아내 사이’ 보다는 오히려 ‘친구와 친구 사이’나 ‘동문 혹은 동창 사이’에 더 가깝다고 보여집니다.
물론 그렇게 하기 위해서는 주석 3번에서 밝힌 바, ‘지나고 보면’이라는 전제가 붙어야만 하고 이 ‘지나고 보면’이란 전제는 ‘내가 왜 상대방 때문에 이런 고통의 순간을 견뎌야 하나’라는 의문이 당연한 동반되는, 감내하기 힘든 시기를 보내야 합니다. 그렇기에 연결을 끊어야 하는 능동자와 단절을 겪게 되는 수동자에게는 여러 가지 원인 보다는 좀 더 단순한 원인만이 존재한다고 판단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