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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글 알리미로 관심이 가는 기사들의 제목을 받아보고 있었는데, 오전에 메일을 확인하다 발견한 기사가 눈에 띄였다.

- "흑피옥은 한민족 고대문명 풀 열쇠" [한국일보]

한 동안 흑피옥 관련하여 과거 기사들만 보내져와서 이 기사도 그러려니 하면서도 혹시나하는 심정으로 클릭했는데, 최근, 바로 어제 일자의 기사라 반가운 마음이 먼저 들었다. 게다가

중국 네이멍구자치구 우란차부(烏蘭察布)시 박물관이 흑피옥 유물 출토지로 추정되는 장소에서 최근 발굴 조사를 벌였다고 우실하 한국항공대 교양학부 교수가 29일 밝혔다.

라고 발굴 조사가 이루어졌다는 내용까지 접하니 조금 더 흑피옥의 진실에 가까이 가는구나라는 생각도 들었다. 하지만, 이어서

그는 "그러나 우란차부 박물관은 발굴 뒤 별다른 설명 없이 유적을 다시 흙으로 덮고 발굴물의 행방도 밝히지 않고 있다"며 "중국과 한국의 전문가가 입회한 가운데 다시 공개 발굴을 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라는 내용을 뒤따르다보니 중국이 자신에게 불리해서 꼼수를 두는 것은 아닌가라는 불안감도 생긴다. 아무튼

"흑피옥은 어쩌면 인류 최고(最古)의 문명을 밝혀줄 열쇠가 될 수 있다"는 우 교수는 "중국은 랴오허문명론 등 정치적 자세에서 벗어나, 고대사를 학술적 관점에서 연구할 수 있도록 보장해야 할 것"이라고 강조했다.

에서 우 교수가 강조했듯이 대승적 관점에서 흑피옥 연구가 이루어질 수 있기를 희망한다.

※ 흑피옥 관련 과거 끄적였던 글들
- 세계사를 다시 쓸 만큼의 파장이 큰 흑피옥
- 드디어 흑피옥 출토지 공개가 이뤄진다고 한다
- 흑피옥 발굴, 공식 제안했단다

P.S.: 이번 기사도 뉴시스를 통해서 접할 것이라고 예상했지만, 예상 외로 한국일보를 통해 접하게 되었다. 주류 언론이 흑피옥에 대한 관심이 높아지는 현상이라고 이해해도 되는지 모르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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메타 블로그를 기웃거리다가 쏠로울프님의 포탈들도 무시하는 간도반환이란 글을 보게 됐다. 안 그래도 예전에 간도 관련 기사에 대해 정말 짤막하게 언급했었던 적이 있었는데, 4년 동안 까맣게 잊고 있다가 쏠로울프님으로 인해 다시금 기억을 떠올릴 수 있었으니, 개인적으로 '무심함의 극치'를 벗어버리지 못했다는 점에 대해 너무 창피함을 금할 수 없다.

창피함을 느끼면서, 기억난 김에 관련 기사들을 찾아보니 달랑 아래 5개의 기사들, 그것도 8월 13일에 작성된 기사들밖에 없어, 정말 본인 뿐만 아니라 언론이나 포털들도 간도 문제에 무관심으로 대응하고 있구나([{조선일보는 뉴시스 기사를 그대로 인용하고 있고 동아일보는 이마저도 아예 없으며 중앙일보는 뉴시스 기사연합뉴스 기사를 인용하는 수준에 그치고 있다.}])라는 생각이 강하게 든다.

※ 간도 반환 관련 기사들
- ‘간도반환 소송가능시한 3주밖에 안남아“ 재미동포 피맺힌 절규 [뉴시스]
- '간도협약' 100년..고교생이 부당함 알리기 나서 [연합뉴스]
- [줌인]“淸ㆍ日 간도협약 무효” 국회의원들도 나섰다([{역사 인식이 없는 2MB야 그렇다 쳐도 국회의원들이라도 나선다고 하니 조금은 기대가 되지만, 한편으론, 국회의원의 평소 모습으로 판단하건대, 일말의 불안감도 상존한다.}]) [헤럴드경제]
- “간도는 한국땅” 정부도 나서나 [헤럴드경제]
- 뭐! 간도가 중국땅이 된다고? [투데이코리아]

고등학생들까지 '간도 반환'이라는 역사적 숙제를 풀기 위해 나서고 있는 마당에, 아무 도움도 못되고 있는 본인이 무엇을 하리...라는 생각이 강하게 들어 심히 부끄럽긴 하지만, 그래도 이렇게 글로나마 끄적거려 놓는 것이 '새 발의 피 속에 있는 적혈구를 구성하는 세포의 단위 분자 내 원자' 정도라도 자위가 된다고 자가최면을 걸면서 간도 문제가, 물론 해결되기까지 오랜 시간을 요하겠지만, 잘 풀려 아래와 같은 뉴스 속보를 보게 되길 진심을 다해 기원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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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미지 출처: 빠르다닷컴검색짤방리스트MBC 뉴스 속보

※ 간도 관련 편협한 논리로 치우치는 것은 좋지 않다고 보기에, 친구가 알려준, 간도 반환에 역사적 근거를 갖다대는 것은 무리에 가깝다고 알리는 글들의 링크도 같이 명기한다.
- 어째 올해가 2009년인데 이 떡밥이 안 나온다 했어. by 슈타인호프
- 간도 떡밥 Revisited by shaind

최근 엠파스와 합병 후 새로와진 네이트에서 기사들을 뒤적거리던 중 눈에 띄는 기사 2개를 발견했는데, 그 기사는 아래와 같다.

- 중국 ‘달러 기축통화 안돼’ 이젠 직격탄 [한겨레]
- "이참에 달러 꺾자" 야심 드러낸 중국 [한국일보]

그리고 위 두 기사의 원본이라 할 수 있는 Financial Times의 기사([{기사를 보기 위해 무료 회원가입을 해야 할 수도 있다.}])는 아래와 같다.

- China calls for new reserve currency [Financial Times]

위 기사들의 내용은 전에 작성했던, 이제는 위안화나 사볼까나...에서 언급했던 것 보다 조금 더 나아가 중국의 통화본색이 점점 더 구체화되고 있다는 것을 알려주고 있다. 다만, 위안화를 전면에 내세우기 보다는 IMF의 특별인출권인 SDR을 내세우는 것이 다른 점이기는 하나 이는 위안화 기축통화를 추진하기 위한 일련의 사전 포석이라 판단해도 큰 무리는 없을 것이기 때문에 의미상 큰 차이는 없다고 보여진다.

중국이 이렇게 대놓고 덤비는 상황에서 이에 대한 미국의 반응은 초큼 우스워 보인다. 처음에는 누구나 예상할 수 있듯이 미국이 중국에 대해서 당연히 '버럭'했다. 아래 관련 기사 참조.

- 중국 달러 흔들기에 발끈한 미국 [한국일보]

그런데 그 '버럭'이 오래가지 않고 바로 꼬리를 말았다. 아래 관련 기사들 참조.

- Dollar dips on Geithner’s ‘loose talk’ [Financial Times]
- 美, 對中 '쩐의 전쟁'서 한걸음 후퇴? [한국일보]

점점 더 재밌어지는 형국이다. 미국과 중국이 Money Hegemony 전쟁의 전초전이 이제부터 시작되려는 상황이니 더욱 그러하다.

그러나 한 가지 걸리는 점은, 안 그래도 '덩 값'으로 떨어지고 있는 원화에 대해 정부 당국은 지금처럼 고래 둘이 막 진검으로 싸우려는 형국을 이용하기 위해 노력을 하는지가 정말 마음에 걸린다. 아무리 2MB와 그 떨거지들이라고는 해도 돌아가는 정세 판단 정도는 해주지 않을까라는 희망을 가지고 싶기 때문에 더 걸리는 것인데... 만약 그게 아니라면? 정말 위안화 예금부터 바로 가입해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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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즘 미국발 금융위기와 이로 인한 동유럽권 위기 등으로 주식 및 환율 등이 불안하게 움직이고 있고 국제 금값은 여기에 발 맞춰 1000달러를 육박하고 있다. 그러다 보니 전문가든 일반인이든 모든 관심이 주식, 환율, 금 포함한 실물 등에 쏠리고 있고 걔중 일부는 안전자산이란 이름 하에 달러와 금에 더욱 더 모아지고 있다.

그런데, 이 두 가지 자산 중 달러에 관심을 가지려고 한다면, 오히려 달러 보다는 위안화에 더 관심을 가져야 한다고 개인적으로는 생각한다. 그 이유에는 여러가지가 있을 수 있겠지만, 본인이 판단하는 가장 큰 이유는 바로 중국 위안화의 기축통화 추진 움직임이다. 이러한 움직임은 중국이 2005년 7월 21일 이후 '복수통화바스켓제도', 일명 관리변동환율제라 불리우는 상하 변동폭 0.3%의 환율제도를 채택하면서 시작되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며 이후 2007년 5월 18일 상하 변동폭 0.5%로의 상향2008년 8월 8일 단행한 외환관리 규정 개정을 통해서 조금씩 구체화시키는 것으로 판단하고 있다.

그 와중에 우리나라가 덕 본 것도 있는데, 바로 한미 양국이 맺은 300억 달러 규모의 통화 스와프 협정이다. 물론, 우리나라 마음대로 쓰지도 못하는 돈이었기는 해도 중국의 움직임을 강만수가 적절히 활용한 것은 주지의 사실이다.

이러한 중국의 동향은 최근 들어 더욱 노골화되고 있다. 그러나, 중국이 의도하는 것처럼 위안화의 기축통화화가 이루어지기 위해서는 선행되어야 할 것이 있는데, 바로 자유변동환율제([{참고로 우리나라의 경우 1997년 12월 16일에 변경했다.}])로의 환율제도 변경이다. 자유변동환율제로의 변경이 선행되지 않으면 중국의 의도는 이루어질 수가 없다. 그런데, 자유변동환율제는 상하 변동폭을 고정하지 않기 때문에 한 번 크게 요동칠 경우 시장은 패닉으로 치닫는 단점이 있다. 가장 최근의 예로는 일중 100원 이상 변동했던 작년 10월 10일과 10월 30일의 우리나라 외환시장의 경우이며 이는 아래 차트를 통해서 당시 시장 분위기를 충분히 유추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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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중 235원 변동했던 2008년 10월 10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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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중 116원 변동했던 2008년 10월 30일

이렇듯 한 번 크게 요동치면 걷잡을 수 없는 자유변동환율제를 중국이 받아들이는 방향으로 결정했다고 판단되는 명백한 상황에서 위안화 절상을 통한 대중 무역수지 개선을 꾀하는 미국과 위안화의 기축통화 정립을 통한 다자(多者) 기축통화 체제 확립 이전에는 위안화 절상을 용인하지 않겠다는 중국의 Money Hegemony 전쟁이 작년 2008년을 기점으로 그 형태를 확연히 수면 위로 드러냈다고 개인적으로 판단하고 있다. 그리고 이 전쟁의 최종 승자는 결국 중국이 될 것으로 예상하고 있다. 국제 원자재 등의 실물가격의 급등 원인이 바로 중국의 급성장이라는 것은 최근 2~3년간 각종 매체에서 떠들었기 때문에 생략한다 해도 중국의 경제 규모가 점점 커진다는 것과 중국을 견제해왔던 미국의 쇠퇴 예상이 가장 큰 이유로 보기 때문이다.

참고로 중국이 '복수통화바스켓제도'를 채택한 2005년 7월 21일 이후 원화(USD/KRW, 2009년 2월 18일까지), 엔화(USD/JPY, 2009년 2월 17일까지), 위안화(USD/CNY, 2009년 2월 17일까지) 등의 대달러 환율 중 엔화와 위안화를 각각 엔화 100엔 대비 원화(JPY/KRW)([{(원/달러 ÷ 엔/달러) × 100 = 원/100엔}])와 위안화 대비 원화(CNY/KRW)([{원/달러 ÷ 위안/달러 = 원/위안}]) 등의 일별 종가로 전환하여 그 움직임 및 추세를 나타내면 아래와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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달러화 대비 원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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엔화 대비 원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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위안화 대비 원화

위 차트들의 x축은 추세 분석을 용이하게끔 하기 위해 2005년 7월 21일을 1로 기산하여 2009년 2월 18일 또는 2009년 2월 17일까지 기산했고 실제 거래일이 한중일(韓中日) 모두 같지 않기 때문에 기준을 우리나라로 맞추는 작업을 해줬다. 아울러 앞서와 같이 휴일을 조정했음에도 실 거래일이 차이가 나는 월(月)이 있을 경우, 예를 들면, 우리나라는 12월 27일 거래일, 28일 휴일, 29일 휴일, 30일 거래일이고 중국이 12월 27일 거래일, 28일 휴일, 29일 휴일, 30일 휴일, 31일 거래일이었다면, 우리나라에 맞추기 위해 31일을 빼고 30일을 거래일로 변경하는 미세 조정까지 반영했다.

중국이 상하 변동폭 0.5%의 '복수통화바스켓제도'를 채택하고 있기 때문엔지 차트를 보면 중국 위안화 대비 원하의 절하 추세 기울기가 제일 작음(0.0002)을 알 수 있지만, 결국 위에서 언급한 대로 중국이 미국과의 Money Hegemony 전쟁에서 승리하고 더불어 자유변동환율제에 근거한 위안화의 기축통화 추진이 예상대로 이루어진다면, 위안화의 절상은 당연히 수반될 것이고 이는 위 차트에서 보는 원화의 절하 추세 기울기를 훨씬 상회하는 동인으로 작용하게 될 것이다.

물론, 엔화나 달러화의 기울기가 현재의 위안화에 비해 훨씬 크기 때문에 위안화에 대한 본인의 판단이 성급하다고 볼 여지도 충분하다. 그러나 달러화나 엔화 대비 원화의 절하 기울기가 지금 보다 더 커지기는, 즉 추세의 기울기가 급격히 증가한다고 보기는 힘들다고 예상하고 있기 때문에 결국 중국이 추진하려는 위안화 기축통화화가 Money Hegemony 전쟁의 승리를 전제로 공고해진다면, 오히려 지금은 달러화 보다도 위안화에 더 관심을 가져야 하는 시기가 아닌가 싶다. 그래서 이제는 달러화 보다는, 아니 달러화에 대해서는 단기적인 관심으로 대하되 위안화에 대해서는 장기적으로 관심을 가지려 한다.

덧.: 써놓고 보니 마치 환투기를 조장하는 글처럼 작성했다. 역시 필력의 부족!!!

※ 참고 기사 및 자료(본문에서 언급한 순서대로)
- 금값·환율↑...골드뱅킹 연환산 253% '대박'
- 중국 위안화 환율제도 변경의 시사점
- 중, 위안화 변동폭 전격 확대 0.3% 에서 0.5%로
- 중국 現 환율제도 변하나
- 미국이 왜 한국에 달러 꿔줄까?
- ‘中華제국’ 야망 드러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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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근 후 인터넷 기사들을 뒤적거리다 발견하게 되었다. 바로 예전 작성 글[세계사를 다시 쓸 만큼의 파장이 큰 흑피옥]에서 언급했던 흑피옥 출토지가 공개된다는 기사다.

기사를 보면 5월 20일 오전 10시에 북경에서 내몽고(內蒙古)로 출발한다고 나와있다. 더구나 영국·일본 등의 유수 방송사 등이 같이 간다고 하니 그 동안 사기꾼 아니냐는 의심의 눈초리를 받아왔던 김희용씨가 의심의 눈초리를 한 번에 날려버리게 될 듯 하다.

아무튼, 16년 이상의 노력이 헛되이 되지 않기를 기원한다.

※ 기사 원문: "인류 최고문명 흑피옥 출토지 20일 공개" [뉴시스]


2008년 05월 08일

'흑피옥'출토지 공개
20일 중국서…세계의 관심

 고고학계 파장을 불러온 검정염료가 칠해진 옥 조각상인 흑피옥의 출토지 공개가 20일 세계 유수언론사 등이 참가한 가운데 이뤄질 것으로 보인다.

 7일 흑피옥 발견자 김희용씨(59)와 전남과학대학 동북아문화연구소 정건재 소장(55)에 따르면 20일 오전 10시께 중국 현지 북경호텔에서 흑피옥 시찰단이 출토지인 네이멍구(內蒙古)로 출발한다.

 시찰단에는 일본ㆍ영국 등의 유수 방송사나 신문사 등 현지 외신 기자들과 국내 일부 언론사가 포함돼 있고 북경중화문화촉진회 전광배 회장 등 중국 측 관계자도 참가한다고 김희용씨는 밝혔다.

 또 도굴범 등의 위해 가능성을 대비해 중국 공안과 군인 등이 출토지 현장까지 함께 이동하고 중국 학계ㆍ재계ㆍ흑피옥 전문가들도 동참할 것으로 예상된다.

 '초고대 인류최초 대정천 신비대문명'이라고 지칭된 이번 시찰단은 네이멍구에서 이틀간 머물며 흑피옥 출토지 여건 등을 세심하게 살피고 학술적 의미를 검토한다.

 현장공개에 이어 현장발굴은 북경올림픽이 끝난 뒤 세계 고고학자 등이 참가한 가운데 이뤄질 가능성이 높다고 김희용씨는 부연 설명했다.

 세계 고고학자들 중 일부는 흑피옥 연대가 1만 4000년을 거슬려 올라간다는 일부 발표에 관심을 집중하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특히 중국 현지에서는 흑피옥 열기가 더해가고 있는 가운데 최근 중국 북경사범대 장일평 교수는 "흑피옥은 객관적인 사실이다. 인류 최초 문명이 될 가능성이 큰 만큼 서둘러 발굴해 연구를 진행해야 한다"는 내용을 담은 편지를 정건재 소장에 보내 현장공개ㆍ발굴 필요성을 강조했다.

 이와 관련 김희용씨는 "흑피옥은 1만여년 전 샘과 호수 등을 중심으로 이뤄진 주거공간과 매장지일 가능성이 크다"며 "많은 사람들이 의심의 눈초리로 쳐다봤지만 이번 현장공개와 이후 발굴이 끝나면 진실은 밝혀질 것"이라고 말했다.김현수 기자 cr20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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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전에 만원만 받고 성형수술 해주는 의사라고 '‘만원짜리 성형수술’ 아시나요'라는 기사를 보고 정말 감탄했던 성형외과의 한성익씨에 대한 짧은 언급을 한적이 있었는데, 이 기사를 보면서 역시 같은 느낌을 받았다. 이 외교관, 기사 내용대로라면 정말 살아있는 천사요, 보살이다.

기사에서 밝힌 '김선흥 주칭다오(靑島) 총영사', 대단하다. 만약 본인이 그러한 상황이었다면? 자신할 수 없는데 말이다. 아무튼, 흉흉한 요즘에 마음에 한 줄기 따스함을 느끼게 해주는 사람임은 분명한 듯 하다.

※ 기사 원문: 갈곳없는 국제미아 보듬은 총영사 [동아일보]


갈곳없는 국제미아 보듬은 총영사

사용자 삽입 이미지2004년 크리스마스이브였던 12월 24일. 주상하이(上海) 부총영사였던 김선흥(사진) 주칭다오(靑島) 총영사는 갓 돌이 지난 여자아이와 만났다.

한 중국인 보모가 “한국인 엄마가 아이를 두고 종적을 감췄으니 한국 정부가 키워 달라”며 아이를 총영사관에 두고 갔기 때문.

돌 지난 아이를 보육원에 보낼 수 없었던 김 총영사는 아이를 집으로 데려갔다. 그리고 아이의 부모가 될 만한 사람들을 수소문하기 시작했다.

하지만 쉽지 않았다. 아이에겐 국적이 없어 중국 정부가 운영하는 보육원에도 보낼 수 없는 상황이었다. 김 총영사는 ‘크리스천 앤드리언 김’이란 필리핀식 이름이 적힌 A4 용지 한 장짜리 출생신고서를 들고 친부모 찾기에 매달렸다.

2003년 10월 베이징(北京) 에서 태어난 이 아이의 어머니는 중국에 임시 체류하던 한국인이었다. 아버지는 필리핀인 노동자였다. 어렵게 친어머니 쪽에 연락을 할 수 있었지만 “기억하고 싶지 않다” “다시는 전화하지 말라”는 답변만 돌아왔다. 김 총영사 부부는 입양을 결심했다.

이후 넉 달 동안 김 총영사 부부에겐 고단한 나날이 이어졌다. 국제미아인 아이에게 여권이 있을 리 없었고, 여행증명서 없이는 바깥출입이 불가능한 중국 사정상 아이 때문에 김 총영사 부인은 집에서 한 발짝도 나갈 수가 없었다.

서울의 대법원과 사회복지재단에 수십 차례 문의를 했지만 ‘국제미아를 입양할 수 있는 방법은 없다’는 답변만 돌아왔다.

생각다 못한 부부는 대한민국 실정법을 어기기로 했다. 그리고 중국 정부에 호소해 아이의 여권을 발급받았다. 아이를 데리고 귀국한 김 총영사의 부인은 동사무소를 찾아가 자신이 낳은 아이라고 늦은 출생신고를 했다. 동사무소 직원은 “남편이 속을 많이 썩였네요”라며 동정했다. 남편이 밖에서 낳아온 아이로 여긴 것이다.

김 총영사는 수차례 인터뷰를 요청하는 기자에게 “공무원이 실정법을 어긴 것은 명백한 잘못”이라며 거절했다.

조수진 기자 jin0619@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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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음에서 발견한 기사다. 제목은 “1만4천년 전 흑피옥, 세계사 다시 써야 할 것”.

내용 자체가 워낙 엄청난 무게로 다가왔기 때문에 다른 언론에서 다룬 기사가 있나 검색해봤다.

검색 결과를 보면 뉴시스의 기사들([{http://119.205.210.43:8080/newsis/index.jsp 주소로 들어가서 '흑피옥' 입력하면 검색되는 기사들}])을 대부분 인용하고 있는 것을 알 수 있다. 물론 주간동아는 '인류사 대발견이냐, 희대의 사기극이냐'라는, 처음 내용을 접하는 사람들이 부정적으로 접근하도록 유도하는 센스를 이미 작년에 발휘하고 있음도 확인할 수 있다.

아무튼 동북공정에 혈안이 돼있는 중국의 입장에서야 당연히 껄끄러운 일일 것이고 역사 및 문화 사대주의에 빠진 얼빠진 역사학자 및 고고학자들에게는 성가신 일이며 애써 부인하고 싶었던 일이겠지만, 이에 굴하지 않고 16년 이상을 흑피옥 발굴에 노력하신 김희용씨에게 정말 찬사를 드린다. 16년 동안 인내하면서 묵묵히 자신이 추구하는 바를 위해 한 걸음씩 나아가는 것이 정말 쉽지 않았을텐데 정말 존경스럽다.

기사 원문 보러 가기

 

“1만4천년 전 흑피옥, 세계사 다시 써야 할 것”

기사등록 일시: [2008-01-17 08:15] /newsis.com All rights reserve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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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뉴시스】

“흑피옥의 연대 측정이 사실로 확인된다면, 고고학은 물론 세계역사를 다시 써야 할 것이다.”

흑피옥 최초 발견자인 김희용씨의 의뢰로 정건재 교수(전남과학대)가 9일 제시한 ‘흑피옥(黑皮玉; 검은 칠 옥)’의 연대가 1만4000여년 전이라는 추정 결론이 나왔다.

김씨와 함께 흑피옥을 연구해온 우실하 교수(한국항공대 인문자연학부·오른쪽)는 16일 자신이 소장하고 있는 흑피옥을 서울대 기초과학공동기기원 정전가속기(AMS) 연구센터에 제공, 흑피옥에 사용된 염료의 성분 분석과 연대 측정을 의뢰했다.

앞서 정 교수가 흑피옥 1점의 연대를 측정한 결과, 1만4300년 전후 60년으로 나오자 믿기 어렵다는 반응이 일었다. 이같은 의심과 의혹을 해명하는 차원에서 서울대 측에 검사를 맡긴 것이다.

소장 중인 흑피옥 20여점 가운데 9점을 AMS연구센터에 전달한 우 교수는 “홍산문화(紅山文化; BC 4500~3000)에서 정식으로 발굴된 것과 모양이 똑같은 흑피옥 7점을 포함한 총 9점”이라며 “염료의 성분을 우선 분석한 다음 연대를 측정하게 된다”고 밝혔다. AMS연구센터장인 윤민영 교수가 참여하는 측정 결과는 7~8주 뒤 나올 예정이다.

우 교수는 “홍산문화에서 보이는 것과 똑같은 이번 흑피옥이 1만4300년 전후의 연대로 드러날 경우 ‘내몽골 흑피옥 문명’과 요서(遼西) 지역 홍산문화를 정점으로 하는 요하문명(遼河文明)이 직접적으로 연결돼있다는 것이 증명된다”고 전했다. 어느 곳에서도 볼 수 없는 똑같은 모양의 흑피옥이 여러 점 나오기 때문이다.

또 “1만4000~6500년 사이로 나타난다면 흑피옥 문화가 지속돼왔다는 사실이 증명되는 셈”이라면서 “ 모양이 똑같은 옥기가 나오는 흑피옥 시대(1만4300여년 전)와 홍산문화(6500~5000년 전) 사이의 공백기 약 8000년을 이어줄 수 있는 물증”이라고 강조했다.

아울러 “홍산문화 옥기와 똑같은 흑피옥의 연대가 홍산문화와 같은 시대로 확인된다면, 흑피옥 문화가 홍산문화로까지 계속 이어졌다는 것은 기정사실이 된다”고 설명했다.

요하문명은 황하(黃河) 문명보다 1000년 이상 앞선다. 1980년대부터 본격적인 발굴이 이뤄졌고, 요하문명으로 명명됐으며, 요하문명 지역에서는 중원지역에 없는 적석총, 빗살무늬토기, 비파형동검 등 만주일대-한반도-일본으로 이어지는 북방계통 유물이 발견되고 있다.

요하문명을 주도한 세력은 우리 민족의 선조와도 곧바로 연결되는 사람들이다. 즉, 흑피옥 문화가 요하문명 지역으로 시간차를 두고 계승됐다면 ‘흑피옥문화→요하문명·홍산문화→한반도’로 흐르는 이동 경로 설정이 가능해진다.

연대가 확인되면 세계 최초·최고 문명의 결정적인 자료가 된다. 동시에 요서지역 홍산문화 선조들과의 직접적인 계승관계, 요하문명을 주도한 우리 민족 선조와의 직접적인 연결 등을 보여주는 증거가 될 수 있다.

구석기 시대는 문명에 도달한 수준이 아니었다는 기존 학설도 뒤집힌다. 최초의 인류문명이 될 가능성도 있다.

우 교수는 “김씨가 가지고 있는 흑피옥만 수백여점이다. 이번 서울대 조사결과를 토대로 더욱 광범위하게 연대를 측정하겠다. 결과가 긍정적으로 나오면 흑피옥 관련 논문도 발표할 계획”이라고 밝혔다.

한편, 중국 베이징에 머물고 있는 김씨는 “흑피옥이 발견된 주변에는 신전, 벽돌식 무덤 등 고대문명의 흔적이 역력했다”며 “인류가 직립보행하기 전 반직립 상태의 고대문명이 확실하다”고 주장했다. “3월께 학술발표, 5월께 현장발굴 등이 이뤄진다”는 일정도 제시했다.

<사진>=우실하 교수 제공

이승영기자 sylee@newsis.com


P.S.: 햇수로 10년째 인내하면서 하나의 결과를 기다리고 있는 본인에게, 이 기사는 세계사 등의 역사적 큰 의미로 다가오기에는 너무 부담스럽지만 김희용씨의 노력 자체만은 본인 개인에게 대단한 힘을 실어주는 내용이라 아니할 수 없다. 아자! 아자! 파이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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Daum의 미디어다음 기사를 보다 발견한 Daum 블로거 기자단원이신 양진석님의 기사인데, 혼자 보기 아깝다는 생각이 든다.

각설하고, 탄산칼륨으로 겉껍질을 만든 후 각종 화공약품(해조산 나트륨, 아교, 한천, 색소등), 석고 등을 주사기로 주입하면 감쪽같은 가짜 계란이 만들어진다고 한다. 이렇게 만들어진 가짜 계란은 진짜 계란에 비해 배 이상의 수익이 된다고 하니, 가짜 계란에 대한 유혹을 뿌리치기 힘들 듯.

아무튼, 이런 가짜 계란을 장복하면 기억상실감, 치매 등을 유발한다고 하니 중국을 여행하는 사람들은 길거리에서 계란을 사먹을 때, 한 번쯤 더 살펴보는 세심함이 필요할 듯 싶다. 또 하나, 혹시 국내로 반입될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지 않을까 싶다.

참고로 QingDaoNews.com에 올라왔고 양진석님도 블로그에 올린 진짜 계란과 가짜 계란의 차이를 극명하게 보여주는 사진 한 장 싣는다.

사용자 삽입 이미지
흰자와 노른자가 바로 섞이는 가짜(左) & 분리가 돼있는 진짜(右)

기사 보기 or 양진석님 블로그로 바로 가기

덧.: 작년 5월에 중국 갔을 때, 길거에서 파는 계란을 먹고 싶다는 마음을 가진 적이 있었지만, 바쁘게 휩쓸려다니다 결국 안먹고 말았는데, 혹시 그 계란이 가짜 계란??? 흠...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