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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글 알리미로 관심이 가는 기사들의 제목을 받아보고 있었는데, 오전에 메일을 확인하다 발견한 기사가 눈에 띄였다.

- "흑피옥은 한민족 고대문명 풀 열쇠" [한국일보]

한 동안 흑피옥 관련하여 과거 기사들만 보내져와서 이 기사도 그러려니 하면서도 혹시나하는 심정으로 클릭했는데, 최근, 바로 어제 일자의 기사라 반가운 마음이 먼저 들었다. 게다가

중국 네이멍구자치구 우란차부(烏蘭察布)시 박물관이 흑피옥 유물 출토지로 추정되는 장소에서 최근 발굴 조사를 벌였다고 우실하 한국항공대 교양학부 교수가 29일 밝혔다.

라고 발굴 조사가 이루어졌다는 내용까지 접하니 조금 더 흑피옥의 진실에 가까이 가는구나라는 생각도 들었다. 하지만, 이어서

그는 "그러나 우란차부 박물관은 발굴 뒤 별다른 설명 없이 유적을 다시 흙으로 덮고 발굴물의 행방도 밝히지 않고 있다"며 "중국과 한국의 전문가가 입회한 가운데 다시 공개 발굴을 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라는 내용을 뒤따르다보니 중국이 자신에게 불리해서 꼼수를 두는 것은 아닌가라는 불안감도 생긴다. 아무튼

"흑피옥은 어쩌면 인류 최고(最古)의 문명을 밝혀줄 열쇠가 될 수 있다"는 우 교수는 "중국은 랴오허문명론 등 정치적 자세에서 벗어나, 고대사를 학술적 관점에서 연구할 수 있도록 보장해야 할 것"이라고 강조했다.

에서 우 교수가 강조했듯이 대승적 관점에서 흑피옥 연구가 이루어질 수 있기를 희망한다.

※ 흑피옥 관련 과거 끄적였던 글들
- 세계사를 다시 쓸 만큼의 파장이 큰 흑피옥
- 드디어 흑피옥 출토지 공개가 이뤄진다고 한다
- 흑피옥 발굴, 공식 제안했단다

P.S.: 이번 기사도 뉴시스를 통해서 접할 것이라고 예상했지만, 예상 외로 한국일보를 통해 접하게 되었다. 주류 언론이 흑피옥에 대한 관심이 높아지는 현상이라고 이해해도 되는지 모르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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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과 관련한 기사는 어제 발견했으나, 블로그 복구 완료한다고 관련 끄적거림을 지금에서야 하게 됐다.

각설하고!

기사를 읽어보면, 흑피옥(黑皮玉)에 대한 공식발굴을 '중국 정부가 공식 제안했다'는 주장이 제기됐다면서 기사가 시작된다. 주장이라 하나 단순히 주장이라고 치부하기에는 무언가 미진하다는 느낌을 받게 되는데, 아마도 첨부 사진 때문이 아닌가 싶다. 아무튼, 잘 진행되어서 세계사 및 그와 관련된 우리나라 고대사 정비가 병행되어 이루어지길 간절히 기원하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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흑피옥과 관련해서는 이전에 끄적거린 글들은 아래에 있다.

※ 기사 출처: "인류최고 문명 흑피옥 발굴, 공식 제안" [뉴시스]

참고로 흑피옥 관련 기사를 더 보고 싶다면, http://119.205.210.43:8080/newsis/index.jsp 주소로 가서 '흑피옥'을 입력 후 검색하면 관련 기사들을 볼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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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음에서 발견한 기사다. 제목은 “1만4천년 전 흑피옥, 세계사 다시 써야 할 것”.

내용 자체가 워낙 엄청난 무게로 다가왔기 때문에 다른 언론에서 다룬 기사가 있나 검색해봤다.

검색 결과를 보면 뉴시스의 기사들([{http://119.205.210.43:8080/newsis/index.jsp 주소로 들어가서 '흑피옥' 입력하면 검색되는 기사들}])을 대부분 인용하고 있는 것을 알 수 있다. 물론 주간동아는 '인류사 대발견이냐, 희대의 사기극이냐'라는, 처음 내용을 접하는 사람들이 부정적으로 접근하도록 유도하는 센스를 이미 작년에 발휘하고 있음도 확인할 수 있다.

아무튼 동북공정에 혈안이 돼있는 중국의 입장에서야 당연히 껄끄러운 일일 것이고 역사 및 문화 사대주의에 빠진 얼빠진 역사학자 및 고고학자들에게는 성가신 일이며 애써 부인하고 싶었던 일이겠지만, 이에 굴하지 않고 16년 이상을 흑피옥 발굴에 노력하신 김희용씨에게 정말 찬사를 드린다. 16년 동안 인내하면서 묵묵히 자신이 추구하는 바를 위해 한 걸음씩 나아가는 것이 정말 쉽지 않았을텐데 정말 존경스럽다.

기사 원문 보러 가기

 

“1만4천년 전 흑피옥, 세계사 다시 써야 할 것”

기사등록 일시: [2008-01-17 08:15] /newsis.com All rights reserve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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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뉴시스】

“흑피옥의 연대 측정이 사실로 확인된다면, 고고학은 물론 세계역사를 다시 써야 할 것이다.”

흑피옥 최초 발견자인 김희용씨의 의뢰로 정건재 교수(전남과학대)가 9일 제시한 ‘흑피옥(黑皮玉; 검은 칠 옥)’의 연대가 1만4000여년 전이라는 추정 결론이 나왔다.

김씨와 함께 흑피옥을 연구해온 우실하 교수(한국항공대 인문자연학부·오른쪽)는 16일 자신이 소장하고 있는 흑피옥을 서울대 기초과학공동기기원 정전가속기(AMS) 연구센터에 제공, 흑피옥에 사용된 염료의 성분 분석과 연대 측정을 의뢰했다.

앞서 정 교수가 흑피옥 1점의 연대를 측정한 결과, 1만4300년 전후 60년으로 나오자 믿기 어렵다는 반응이 일었다. 이같은 의심과 의혹을 해명하는 차원에서 서울대 측에 검사를 맡긴 것이다.

소장 중인 흑피옥 20여점 가운데 9점을 AMS연구센터에 전달한 우 교수는 “홍산문화(紅山文化; BC 4500~3000)에서 정식으로 발굴된 것과 모양이 똑같은 흑피옥 7점을 포함한 총 9점”이라며 “염료의 성분을 우선 분석한 다음 연대를 측정하게 된다”고 밝혔다. AMS연구센터장인 윤민영 교수가 참여하는 측정 결과는 7~8주 뒤 나올 예정이다.

우 교수는 “홍산문화에서 보이는 것과 똑같은 이번 흑피옥이 1만4300년 전후의 연대로 드러날 경우 ‘내몽골 흑피옥 문명’과 요서(遼西) 지역 홍산문화를 정점으로 하는 요하문명(遼河文明)이 직접적으로 연결돼있다는 것이 증명된다”고 전했다. 어느 곳에서도 볼 수 없는 똑같은 모양의 흑피옥이 여러 점 나오기 때문이다.

또 “1만4000~6500년 사이로 나타난다면 흑피옥 문화가 지속돼왔다는 사실이 증명되는 셈”이라면서 “ 모양이 똑같은 옥기가 나오는 흑피옥 시대(1만4300여년 전)와 홍산문화(6500~5000년 전) 사이의 공백기 약 8000년을 이어줄 수 있는 물증”이라고 강조했다.

아울러 “홍산문화 옥기와 똑같은 흑피옥의 연대가 홍산문화와 같은 시대로 확인된다면, 흑피옥 문화가 홍산문화로까지 계속 이어졌다는 것은 기정사실이 된다”고 설명했다.

요하문명은 황하(黃河) 문명보다 1000년 이상 앞선다. 1980년대부터 본격적인 발굴이 이뤄졌고, 요하문명으로 명명됐으며, 요하문명 지역에서는 중원지역에 없는 적석총, 빗살무늬토기, 비파형동검 등 만주일대-한반도-일본으로 이어지는 북방계통 유물이 발견되고 있다.

요하문명을 주도한 세력은 우리 민족의 선조와도 곧바로 연결되는 사람들이다. 즉, 흑피옥 문화가 요하문명 지역으로 시간차를 두고 계승됐다면 ‘흑피옥문화→요하문명·홍산문화→한반도’로 흐르는 이동 경로 설정이 가능해진다.

연대가 확인되면 세계 최초·최고 문명의 결정적인 자료가 된다. 동시에 요서지역 홍산문화 선조들과의 직접적인 계승관계, 요하문명을 주도한 우리 민족 선조와의 직접적인 연결 등을 보여주는 증거가 될 수 있다.

구석기 시대는 문명에 도달한 수준이 아니었다는 기존 학설도 뒤집힌다. 최초의 인류문명이 될 가능성도 있다.

우 교수는 “김씨가 가지고 있는 흑피옥만 수백여점이다. 이번 서울대 조사결과를 토대로 더욱 광범위하게 연대를 측정하겠다. 결과가 긍정적으로 나오면 흑피옥 관련 논문도 발표할 계획”이라고 밝혔다.

한편, 중국 베이징에 머물고 있는 김씨는 “흑피옥이 발견된 주변에는 신전, 벽돌식 무덤 등 고대문명의 흔적이 역력했다”며 “인류가 직립보행하기 전 반직립 상태의 고대문명이 확실하다”고 주장했다. “3월께 학술발표, 5월께 현장발굴 등이 이뤄진다”는 일정도 제시했다.

<사진>=우실하 교수 제공

이승영기자 sylee@newsis.com


P.S.: 햇수로 10년째 인내하면서 하나의 결과를 기다리고 있는 본인에게, 이 기사는 세계사 등의 역사적 큰 의미로 다가오기에는 너무 부담스럽지만 김희용씨의 노력 자체만은 본인 개인에게 대단한 힘을 실어주는 내용이라 아니할 수 없다. 아자! 아자! 파이팅!!!