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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머니의 사랑, 모성애가 아이들([{위 기사에서는 생후 만 3년된 아이들을 비교했다.}]) 뇌 크기를 결정한다는 기사가 영국 데일리메일에서 나왔다.

- 원문: Horrifying scans that show the real impact of love: Brain of neglected child is much smaller than that of a normal three-year-old

그리고 노컷뉴스에서 이를 요약한 기사도 나왔다.

- 사랑받지 못해 쭈그러든 3살 아이 뇌 공개 [노컷뉴스]

원문에서는 어머니의 사랑을 제대로 받은 아이의 뇌가 그렇지 못한 아이의 뇌 보다 더 크고 더 평평하면서도 밝은 부분이 많다[fewer spots and less dark areas]고 언급하고 있으며 이렇게 된 가장 주요 원인은 바로 어머니가 아이를 어떻게 대하고 양육했는가라고 밝히고 있다.

3-Year-Old-Children
Shocking: According to neurologists the sizeable difference between these two brains has one primary cause - the way were treated by their mothers

※ 출처: 위 기사 원문

Both of these images are brain scans of a two three-year-old children, but the brain on the left is considerably larger, has fewer spots and less dark areas, compared to the one on the right.

According to neurologists this sizeable difference has one primary cause - the way each child was treated by their mothers.

아울러 기사를 읽어보다 보면, 어머니의 사랑을 부족하게 받은 아이들은 지능이 떨어지고 사회성이 부족하며 쉽게 약물 중독에 걸리고 폭력 의존적일 가능성이 높다는 내용도 나오니 더 자세한 내용은 원문을 참고하는 것이 나을 듯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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언젠가 큰 스님께서 '부부'에 대해 말씀하신 적이 있는데, 그 때 말씀하시길, '부부'란 남녀 모두, 평생 '보살([{보살의 서원(誓願)은 다른 이들의 고통을 덜어주기 위하여 자신의 궁극의 목표인 열반(涅槃)을 연기하겠다는 것이다.}])행(菩薩行)'을 실천하는 존재들이라고 하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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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말을 가만 생각해보면, 참 잘 들어맞는 비유란 생각이 든다.

왜 그런가 살펴보자.

남자와 여자가 사랑이라는 감정을 매개로 만나 서로 살을 섞고 그 결과로 자식을 낳아 기르다 삶의 끝에서 인생을 마감하게 된다. 이 모든 과정이 긍정적인 선순환으로만 흘러간다면, 아마 부부 사이에 아무 문제도 없을 것이다.

그.러.나.!!!

실상은 그렇지 않다는데 문제가 있고 설사 그런 경우가 있다 하더라도 선순환으로만 흘러가는 부부 사이는 '새 발의 피 속에 있는 적혈구의 구성 원자를 이루는 단위 전자' 만큼도 주변에서 찾기 어렵다. 한 마디로 거의 대부분의 부부들은 크든 작든 갈등의 골을 지날 수밖에 없고 때로는 지나면서 풀어지지 못한 이 갈등을 안고 살아갈 수밖에 없는 경우도 있다.([{단, 상대를 마치 자신의 한 소유물인양 취급하면서 자신의 의지대로 상대를 움직이려고 하는, 결국은 상대를 꼭둑각시로 만들어 버리는 아주 극악(極惡)한 경우결단코 배제한다. 왜냐하면, 이러한 경우는 상대방이 꼭둑각시라는 것을 인지하는 순간 이후부터는 결국 결별이라는 수순으로 흘러가기 때문이다.}])

갈등을 안고 살아갈 수밖에 없다면, 이 갈등을 어떻게 풀어나가느냐가 결국은 관건이 될 터. 이 갈등을 풀어나가는 과정이 상기에서 언급한 '보살행'과 다를 바 없지 않을까?

다른 이들의 고통을 덜어주기 위한 행동, 일명 보살행(菩薩行), 있는 그대로의 상대방을 받아들이고, 이해할 수 있게 해주고, 더 나아가 서로 융화될 수 있는 초석을 제공해준다는 생각을 떨칠 수 없다.([{이러한 점을 꼭 악용하거나 지 입맛에 맞추어 인용하려는 놈(년)(들)이 반드시 있기 때문에, 실 생활에서는 반드시 주의가 필요한 부분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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상기 내용과 밀접한 관련이 있다고는 보여지지는 않지만, 아무튼, 서울신문의 '[여성&남성] ‘작은습관’ 바꾸면 아내가 웃는다'를 읽다가 문득 큰 스님의 말씀이 떠올라 몇 자 적어봤다.

기사 원문 보러 가기

남을 도울 줄 아는 사람은 남의 도움도 받을 줄 안다.

이 말과 일맥상통하는 내용이다. 요즘은 자존심 강한, 아니 아주 강한 사람들을 주변에서 너무 많이 본다. 나 개인적으로는 상당히 씁쓸하다.


친구 중에 아주 유별난 사람이 있다. 그는 돈이 없으면 절대 사람을 만나지 않는다. 남에게 피해를 안줄 테니, 남도 나에게 피해를 줘서는 안된다는 식이다. 철저히 ‘개인주의’를 지향하는 사람은 함께 어울리자면 약간은 피곤하다. 10원까지도 정확히 계산기 들고 계산해서 나눠 내려 하기 때문이다.

‘더치 페이’라고 하는 것도 개인주의적인 서양의 사고 방식에서 나온 것으로, 그 도가 지나칠 경우에는 자칫 ‘왕따’ 당하기 쉽다. 그런 사람은 배우자감으로서도 인기가 없다. 주고 받는 것을 너무 따지는 관계에서는 ‘사랑’이란 단어가 끼어들 틈이 없다.

오래 전에 <약속>이란 한국 영화를 봤는데, 마음에 꼭 와 닿는 대사가 있었다. “남에게 도움을 받을 줄 모르는 사람은 남을 도울 줄도 모르는 법이야.” 경제적인 어려움에 처한 여자 주인공을 도우려던 남자 주인공에게, 여 주인공이 자존심을 짓밟혔다며 화를 내는 장면에서 남자 주인공이 했던 대사이다.

그렇다. 우리는 남에게 도움을 줄 수도, 받을 수도 있는 존재로서 항상 마음을 열어 두어야 한다. 남에게 도움을 받았다고 해서, 남에게 폐를 좀 끼쳤다고 해서 그것이 수치스럽거나 치명적인 오점이 될 수는 없다. 그런 완벽주의는 결혼에 앞서서 필히 고쳐야 할 부분이다.

결혼 적령기를 훌쩍 넘은 미혼 남녀들 중에 이런 성격을 가진 사람들이 꽤 있다. 그들은 자신의 치명적인 헛점을 남에게 보이는 것을 죽도록 싫어한다. 그 정도로 자존심이 센 사람들이다. 그들은 남에게 기대는 방법을 모른다. 어쩌다 남에게 기대려고 해도 스스로가 그걸 부자연스러워 한다. 이런 사람에게 누가 가까이 다가설 수 있겠는가. 마음의 문을 열어라. 홀로 쓸쓸하게 노년을 맞이하지 않으려면 말이다.

만일 지갑이 텅 비었는데 누군가 밥을 먹으러 가자고 했다면, 지갑을 만지작거리다가 결국은 ‘다른 약속이 있어서’ 혹은 ‘별로 배가 안고파서’라는 핑계로 둘러대며 그 자리를 모면할 생각은 하지 말라. 차라리 당당하게 “나 돈이 없는데 오늘은 네가 사라! 다음 번엔 내가 살게!”라고 말할 수 있는 배짱을 길러라.

돈이 없을 때는 다른 사람과 절대 식사할 수 없다는 생각을 가진 사람은 절대 매력적인 배우자감이 아니다. 사람과 사람이 처음 만날 때에는 예상치 못했던 당황스런 일이 생길 수도 있고, 얼굴이 화끈 달아오르는 무안한 사건이 벌어질 수도 있다. 그럴 때 상대방에게 기댈 수 있는 배짱이 없다면 얘기는 그걸로 끝이다.

벽을 부수고 허물없는 관계가 되려면, 남에게 아쉬운 말 한마디 못하고 낑낑대는 나약한 모습은 버려야만 한다.

커플매니저 www.duonet.com
일러스트 이미정

'내가 사랑하는 사람들'에 더 비중을 두느냐, 아니면 '나를 사랑하는 사람들'에 더 비중을 두느냐. 미묘한 사안이다.

일반적으로 우리가 연인이라고 부르는 A와 B(남녀불구분)가 있다고 하자. 다음과 같은 대화는 둘이 사귄지 일정 기간이 흐르면 언제든지 나올 수 있는 대화다.

A: 난 내가 사랑하는 사람보다는 나를 사랑하는 사람이 더 소중해.
B: 그게 무슨 말이야?

A: 말 그대로야.
B: ...

B: 그렇다면 난 너에게 어떤 의미지?
A: 중요한 의미의 사람이지. -> ①

B: 중요한 의미의 사람이라면서 어떻게 그렇게 말할 수 있어? 나를 더 이상 사랑하지 않는단 말이야? 내가 더 이상 너에게 중요한 대상이 아니란 말이야? -> ②

================= Break =================
내 개인적인 생각을 말하라면, 난 B(남녀 불문)의 마지막 대화(②)를 지나가는 쓰레기통에 던져버릴 것이다. 왜냐고? A가 위에서 언급한 중요한 의미의 사람(①)이라는 의미를 B는 제대로 파악하지 못했기 때문이다. A는 이미 B를 '내가 사랑하는 사람'에서 '나를 사랑하는 사람'으로 바꿔서 더 큰 비중으로, 더 중요한 존재로 여기고 있던 것인데 말이다.

'내가 사랑하는 사람들'과 '나를 사랑하는 사람들', '아' 다르고 '어' 다른 우리말에 있어 분명 논란의 여지가 있을 수 있다. '나를 사랑하는 사람들'을 잘못 이해하게 되면 자신의 의지는 거의 없는 '마마보이(걸)'를 연상할 수도 있고 '내가 사랑하는 사람들'을 잘못 이해하면 주위 사람, 주위 환경을 전혀 생각치 않는 '독불장군'을 연상할 수도 있기 때문이다.

================= Continue =================
일상 생활에서 우리의 행동을 제약하는 것에는 여러가지가 있을 수 있다. 그 중에 '나를 사랑하는 사람들'로 인해 받는 제약, 아니다, 제약이란 표현보다는 차라리 배려가 더 맞겠다. 다시 말하면, '나를 사랑하는 사람들'을 배려하기 때문에 자신의 행동을 조심하는 경우는 없는가?라고 묻고 싶다. 물론 그 행동의 조심에는 자기가 하고 싶어도 하지 못하는 것이 포함될 수도 있다. 아무튼 다른 사람은 어떨지 몰라도 나에겐 그러한 행동의 조심이 분명히 있다. 그래서 나는 나의 행동 하나하나에 신경을 더 쓰고 더 세심하게 된다.

'내가 사랑하는 사람들'은 기호로 표시한다면, 나를 중심으로 사방으로 뻗쳐가는 화살표를 연상하면 된다. 반면에 '나를 사랑하는 사람들'은 그 반대로 사방에서 중심에 있는 '나'를 향해 있는 화살표를 연상하면 되고. 따라서 '내가 사랑하는 사람들'에서는 내 임의로, 부담 없이 화살표를 없애거나 추가할 수 있지만, '나를 사랑하는 사람들'에서는 내 임의로 '나'를 향한 화살표를 지우거나 추가할 수 없다는 결론에 도달한다. 왜냐하면, 그 화살표를 지우거나 추가할 수 있는 사람은 화살표를 지우거나 추가하려는 바로 그 사람이지 절대 내가 될 수 없기 때문이다.

'나를 사랑하는 사람들'에는 여러 사람들이 있을 수 있다. 부모 형제야 말할 것도 없고, 결혼 전이라면 연인이, 결혼 후라면 아내와 자식이 여기에 해당될 것이고, 어릴 때부터 같이 커왔던 친구(들)와(과) 직장에서는 상사, 선배, 동기, 후배 등이 해당될 수도 있다. 물론 이 외에도 무수히 많은 사람들이 여기에 해당될 수 있음은 주지의 사실이다.

이 글을 쓰게 된 동기는 몇 가지가 있지만 그 중에서도 분명한 것은, 내 경우 '나를 사랑하는 사람들'이 정말 많다는 점이 크게 작용했다. 이 글을 쓰는 현재까지도 나는 많은 '나를 사랑하는 사람들'로부터 과분한 '사랑'을 받아오고 있고 또 받고 있다. 남들이라면, 불가능했을 삶도 과분한 사랑으로 극복하고 살고 있고. 그래서 다시 한 번 더 생각하게 되면서 쓰게 됐다.

그렇기 때문에 나는 '나를 사랑하는 사람들'에 대한 고마움을 간직한 채 하루하루를 살아가되 나 뿐만이 아니라 '나를 사랑하는 사람들'과 같이 나아갈 수 있는 그런 삶을 살아가려고 노력하고 있다. 단, 내 중심은 지켜나가면서 말이다.

'내가 사랑하는 사람들'은 그 다음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