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뜬금 없이 갑자기 웬 'T'자형 인간(사람, 이하 인간으로 통일)?이라고 할지 모르겠지만, 살아오면서 개인적으로 되고 싶어하고 그리고 지금도 끊임없이 되기 위해 노력하고 있는 인간형이 바로 'T'자형 인간이다. 그러면 왜 'T'자형이냐?

우선 위 이미지에서 ㅡ와ㅣ, 이렇게 두 부분으로 구분하여 각각 ①, ② 번호를 매겼는데, ① 부분은 쉽게 얘기하면 박학다식(博學多識)에 해당하고 ② 부분은 바로 자기 자신이 먹고 사는 밥줄, 전문 지식 또는 전문적인 노하우에 해당한다. 그래서 ①과 ②가 조화롭게 형성되어 있을 경우 자기 자신도 이롭게 하면서도 남 역시 이롭게 할 수 있는 바탕이 마련된다고 생각한다. 널리 알아야 무엇이 이로운지 알 수 있을 것이며 아울러 깊이가 있어야 그 사람의 말과 행동에 대해 신뢰가 쌓일 수 있을 것이기 때문이다.

그런데, 만약 ① 부분이 없이 ② 부분만 있는 인간형, 다시 말하면, 2MB와 그 떨거지들이 해당되는 'l'형 인간이면 어떤 모습일까? ② 부분만 있기 때문에 전문적인 지식이나 노하우는 분명 지니고 있을 것이지만, 가만히 보면 영어의 I와 같음을 알 수 있기 때문에 이는 결국 나(I)만을 위하고 타인을 전혀 배려하지 않는 이기적인 인간형으로 귀착됨을 미루어 짐작할 수 있다.

반면에 ① 부분만 있는 인간형은 어떨까? ② 부분이 없기 때문에 ''형 인간이 될 수밖에 없는데, 이러한 부류는 지지대 없는 사상누각(沙上樓閣)형 인간에 해당된다. 핵심(②)이 없기 때문에 많이 알긴 하지만, 결국 주변에서 변죽만 울리는 인간형이란 의미다.

물론, 사람마다 차이는 있을 것이다. 어떤 사람은 ① 부분은 넓은 반면에 ② 부분이 짧을 수 있고 또 어떤 사람은 ① 부분이 좁은 반면에 ② 부분이 길 수도 있다. 하지만 ① 부분은 계속 넓히려 노력하고 ② 부분은 계속 길어지도록 노력해서 조화를 이룰 수만 있다면, 즉, 보기 좋은 'T' 만들 수만 있다면, 그리고 그런 사람들이 꾸준히 많아진다면, 우리 사는 모습이 지금처럼 팍팍해지지 않을 것이라는 판단이 든다.

그래서 감히 주장한다. 'T'자형 인간(사람)이 되자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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빈 틈!

인간은 완전하지 않다. 더군다나 '시간(時間)'이라는 상위 환경을 두고 있는 상황에서는 더더욱 완전(完全)할 수 없다.

그러나!

종종 우리 주변에서는 완전할 수 없는 존재가 인간이라는 사실을 잘 인지하지 못하는 사람들을 많이 만나게 된다. 특히 사회생활에 있어 업무 능력이 뛰어나다고 주변에서 인정받는 사람들에게서 그러한 '무결성(無缺性) 추구'의 행동 양태를 많이 볼 수 있다. 하지만, 태생적으로 불완전할 수밖에 없는 인간이 완전무결을 추구하다보면 당연히 부작용이 뒤따를 수밖에 없다.

조금 방향을 바꿔서 생각해보자.

아래 사진은 Window Vista에 들어가 있는 가젯 중의 하나이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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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래 이미지는 어릴 때 많이 놀았던 '그림퍼즐'을 연상케하는 이미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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두 이미지를 보면 알 수 있듯이 '그림퍼즐'은 기본적으로 빈 틈이 존재하기 때문에 즐길 수 있는 게임이다. 또한 그 빈 틈이 존재함으로 인해 조각들이 움직일 수 있는 공간이 생긴다. 만약 빈 틈이 존재하지 않는다고 가정하면? 그러면 조각들은 전혀 움직일 수가 없게 되고 한 번 흐트려진 후에는 원래의 모습으로 절대 돌아갈 수 없게 된다.

인간이 태생적으로 불완전하다는 것은, 곧, 인간은 태생적으로 빈 틈을 안고 태어난다는 의미와 일맥상통하다. 따라서 이를 '그림퍼즐'에 빗댄다면, 태생적으로 불완전하지만, 불완전함을 의미하는 빈 틈이 존재하기 때문에 원래의 올바른 모습-그림퍼즐에서의 처음 모습-을 향해서 움직여나갈 수 있다는 결론 도출이 가능하다. 반대로 '그림퍼즐'을 무결성을 추구하는 사람에 빗댄다면, 그 사람은 빈 틈을 전혀 고려하지 않(고 스스로 빈 틈이 없다고 자아도취에 빠져있)는 사람이라는 결론에 이르게 되고 이는 다시 앞으로 나아가거나 개선되는 모습을 전혀 기대할 수 없는 사람이라는 결론까지 귀착되게 된다. 따라서 빈 틈을 인정하되 그 빈 틈을 올바른 모습을 향해서 앞으로 나아가고 끊임없이 개선해나갈 수 있는 여유 공간으로써 인지해야 할 것이라고 판단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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알았지? XYZ氏???

앞서 '성선설(性善說) vs. 성악설(性惡說)'에서도 이야기했지만, 인간은 당연히 악(惡)한 존재(나 개인적으로는 성악설(性惡說)을 지지)고 그것을 일부 설명해주고 있는 기사라서 올린다.


인간의 본성은 과연 선할까, 악할까.

많은 철학자들이 이 문제를 놓고 토론을 벌였지만 명확한 결론은 나지 않았다. 현대에 들어와 심리학이 발달하면서 직접 실험을 통해 확인해 보려는 시도가 있었다. 대표적인 실험이 바로 필립 짐바르도 교수의 '감옥 시뮬레이션 실험'이다.

MBC `서프라이즈'(지난 30일 방영)는 영화로도 제작돼 화제를 모았던 이 실험을 방송에서 소개하는 시간을 마련했다. 재현을 통해 간단하게 표현했지만, 실제 이런 일이 있었다는 사실이 시청자들에게는 충격적이었다.

이날 방송은 실험에 참여할 지원자를 모집하는 장면에서 시작됐다. 짐바로드 교수는 건강하고 평범한 대학생들을 지원자를 대상으로 2주 동안 실제 교도소 생활을 체험하도록 했다. 지원자 중 일부는 간수역할을 맡았고 나머지는 죄수가 되었다.

극한 상황에서 인간이 어떤 행동을 보이는 지를 관찰하기 위해 고안된 이 실험은 참가자들에게도 흥미로운 경험이었다. 그러나 묘한 심리상태의 변화가 이들을 사로잡기 시작했다.

짐바르도 교수는 먼저 제복을 입은 교도관과 죄수복을 입은 죄수역할의 참가자들의 심리를 분석했다. 특별한 의미가 담긴 유니폼이 사람에게 미치는 영향은 컸다. 죄수복은 그 자체로 사람을 위축시켰으며, 간수들의 제복과 선글라스, 곤봉은 강자로서의 위압감을 주었다.

흥미로운 사실은 둘째 날부터 참가자들은 진짜 교도관이 된 마냥 행동하기 시작했다는 것이다. 죄수들은 자신들이 실험이 아닌 실제상황에 처한 것이 아니냐는 의심을 품기 시작했고, 난동을 부리다 교도관들에게 제압당하는 사건도 생겨난다.

실험 셋째 날부터는 교도관들이 완벽하게 무력으로 죄수들을 통제하게 된다. 독방에 가두거나, 스스로 체벌을 고안하여 강제했으며 구타도 발생했다. 불과 삼일 전만 해도 이들은 평범한 대학생들이었다.

5일째에 이르자 정신적인 충격으로 발작을 일으키는 사람이 나왔다. 그가 실험에서 열외 되자 다른 죄수들이 동요하기 시작했다. 결국 이들은 집단 광기를 보이며 폭동을 일으킨다. 결국 여기서 모든 실험은 중단되고 만다.

1971년 미국 스탠포드 대학에서 직접 교도소 세트를 지어 실시했던 이 실험의 결과는 놀랍기만 하다. 불과 5일 만에 인간의 이성과 선한 의지는 마비되었다. 나쁜 환경이 얼마나 인간을 사악하게 만들 수 있는 지를 이 실험은 단적으로 보여줬다.

이 실험내용은 학자들 사이에 논란이 부분하다. 한 가지 시뮬레이션만으로 인간의 심리를 단정 짓기 어렵기 때문이다. 그러나 얼마 전 논산 훈련소에서 있었던 '인분사건'의 경우와 마찬가지로 특정한 상황에서 사람은 비이성적인 일도 얼마든지 할 수 있는 존재다.

특히 교도관 역할을 맡았던 대학생들이 2차 대전 당시 나찌들이 유태인에게 가했던 체벌과 똑같은 방식의 체벌을 고안해 냈다는 사실은 인간 내부에 도사리고 있는 악마적 본성에 대한 두려움을 들게 한다. [TV리포트 김진수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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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을 도울 줄 아는 사람은 남의 도움도 받을 줄 안다.

이 말과 일맥상통하는 내용이다. 요즘은 자존심 강한, 아니 아주 강한 사람들을 주변에서 너무 많이 본다. 나 개인적으로는 상당히 씁쓸하다.


친구 중에 아주 유별난 사람이 있다. 그는 돈이 없으면 절대 사람을 만나지 않는다. 남에게 피해를 안줄 테니, 남도 나에게 피해를 줘서는 안된다는 식이다. 철저히 ‘개인주의’를 지향하는 사람은 함께 어울리자면 약간은 피곤하다. 10원까지도 정확히 계산기 들고 계산해서 나눠 내려 하기 때문이다.

‘더치 페이’라고 하는 것도 개인주의적인 서양의 사고 방식에서 나온 것으로, 그 도가 지나칠 경우에는 자칫 ‘왕따’ 당하기 쉽다. 그런 사람은 배우자감으로서도 인기가 없다. 주고 받는 것을 너무 따지는 관계에서는 ‘사랑’이란 단어가 끼어들 틈이 없다.

오래 전에 <약속>이란 한국 영화를 봤는데, 마음에 꼭 와 닿는 대사가 있었다. “남에게 도움을 받을 줄 모르는 사람은 남을 도울 줄도 모르는 법이야.” 경제적인 어려움에 처한 여자 주인공을 도우려던 남자 주인공에게, 여 주인공이 자존심을 짓밟혔다며 화를 내는 장면에서 남자 주인공이 했던 대사이다.

그렇다. 우리는 남에게 도움을 줄 수도, 받을 수도 있는 존재로서 항상 마음을 열어 두어야 한다. 남에게 도움을 받았다고 해서, 남에게 폐를 좀 끼쳤다고 해서 그것이 수치스럽거나 치명적인 오점이 될 수는 없다. 그런 완벽주의는 결혼에 앞서서 필히 고쳐야 할 부분이다.

결혼 적령기를 훌쩍 넘은 미혼 남녀들 중에 이런 성격을 가진 사람들이 꽤 있다. 그들은 자신의 치명적인 헛점을 남에게 보이는 것을 죽도록 싫어한다. 그 정도로 자존심이 센 사람들이다. 그들은 남에게 기대는 방법을 모른다. 어쩌다 남에게 기대려고 해도 스스로가 그걸 부자연스러워 한다. 이런 사람에게 누가 가까이 다가설 수 있겠는가. 마음의 문을 열어라. 홀로 쓸쓸하게 노년을 맞이하지 않으려면 말이다.

만일 지갑이 텅 비었는데 누군가 밥을 먹으러 가자고 했다면, 지갑을 만지작거리다가 결국은 ‘다른 약속이 있어서’ 혹은 ‘별로 배가 안고파서’라는 핑계로 둘러대며 그 자리를 모면할 생각은 하지 말라. 차라리 당당하게 “나 돈이 없는데 오늘은 네가 사라! 다음 번엔 내가 살게!”라고 말할 수 있는 배짱을 길러라.

돈이 없을 때는 다른 사람과 절대 식사할 수 없다는 생각을 가진 사람은 절대 매력적인 배우자감이 아니다. 사람과 사람이 처음 만날 때에는 예상치 못했던 당황스런 일이 생길 수도 있고, 얼굴이 화끈 달아오르는 무안한 사건이 벌어질 수도 있다. 그럴 때 상대방에게 기댈 수 있는 배짱이 없다면 얘기는 그걸로 끝이다.

벽을 부수고 허물없는 관계가 되려면, 남에게 아쉬운 말 한마디 못하고 낑낑대는 나약한 모습은 버려야만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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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러스트 이미정

'사람에 대한 고민', 적게 해도 문제지만, 많이 해도 문제다.

왜냐고?

이미 한정된 정보를 통해 얻은 한 인간에 대한 정보라는 것은 취합해봐야 그 양적인 한계로 인해 판단에 그리 큰 도움을 주지 못하기 때문이다. 또한 많은 고민을 한다고 해도 그 속에 섞여 들어가 있는 수많은 Noise로 인해서 고민에 들인 시간에 비례하여 순도 높은 결과가 나오지 않기 때문이기도 하다. 즉, 적게 해도 시간 낭비/정신력 낭비요, 많이 해도 그 나물에 그 밥인 별반 다르지 않은 결론에 도달한단 말이다.

따라서!!!

같이 갈만한 사람은 같이 가는 것이요, 그렇지 못한 사람은 관심에서 제외하면 된다. 그러면 고민할 일도 없어진다. 어떤가? 아주 간단하지 않은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