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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전에 만원만 받고 성형수술 해주는 의사라고 '‘만원짜리 성형수술’ 아시나요'라는 기사를 보고 정말 감탄했던 성형외과의 한성익씨에 대한 짧은 언급을 한적이 있었는데, 이 기사를 보면서 역시 같은 느낌을 받았다. 이 외교관, 기사 내용대로라면 정말 살아있는 천사요, 보살이다.

기사에서 밝힌 '김선흥 주칭다오(靑島) 총영사', 대단하다. 만약 본인이 그러한 상황이었다면? 자신할 수 없는데 말이다. 아무튼, 흉흉한 요즘에 마음에 한 줄기 따스함을 느끼게 해주는 사람임은 분명한 듯 하다.

※ 기사 원문: 갈곳없는 국제미아 보듬은 총영사 [동아일보]


갈곳없는 국제미아 보듬은 총영사

사용자 삽입 이미지2004년 크리스마스이브였던 12월 24일. 주상하이(上海) 부총영사였던 김선흥(사진) 주칭다오(靑島) 총영사는 갓 돌이 지난 여자아이와 만났다.

한 중국인 보모가 “한국인 엄마가 아이를 두고 종적을 감췄으니 한국 정부가 키워 달라”며 아이를 총영사관에 두고 갔기 때문.

돌 지난 아이를 보육원에 보낼 수 없었던 김 총영사는 아이를 집으로 데려갔다. 그리고 아이의 부모가 될 만한 사람들을 수소문하기 시작했다.

하지만 쉽지 않았다. 아이에겐 국적이 없어 중국 정부가 운영하는 보육원에도 보낼 수 없는 상황이었다. 김 총영사는 ‘크리스천 앤드리언 김’이란 필리핀식 이름이 적힌 A4 용지 한 장짜리 출생신고서를 들고 친부모 찾기에 매달렸다.

2003년 10월 베이징(北京) 에서 태어난 이 아이의 어머니는 중국에 임시 체류하던 한국인이었다. 아버지는 필리핀인 노동자였다. 어렵게 친어머니 쪽에 연락을 할 수 있었지만 “기억하고 싶지 않다” “다시는 전화하지 말라”는 답변만 돌아왔다. 김 총영사 부부는 입양을 결심했다.

이후 넉 달 동안 김 총영사 부부에겐 고단한 나날이 이어졌다. 국제미아인 아이에게 여권이 있을 리 없었고, 여행증명서 없이는 바깥출입이 불가능한 중국 사정상 아이 때문에 김 총영사 부인은 집에서 한 발짝도 나갈 수가 없었다.

서울의 대법원과 사회복지재단에 수십 차례 문의를 했지만 ‘국제미아를 입양할 수 있는 방법은 없다’는 답변만 돌아왔다.

생각다 못한 부부는 대한민국 실정법을 어기기로 했다. 그리고 중국 정부에 호소해 아이의 여권을 발급받았다. 아이를 데리고 귀국한 김 총영사의 부인은 동사무소를 찾아가 자신이 낳은 아이라고 늦은 출생신고를 했다. 동사무소 직원은 “남편이 속을 많이 썩였네요”라며 동정했다. 남편이 밖에서 낳아온 아이로 여긴 것이다.

김 총영사는 수차례 인터뷰를 요청하는 기자에게 “공무원이 실정법을 어긴 것은 명백한 잘못”이라며 거절했다.

조수진 기자 jin0619@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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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성익.

미용성형이 아니라 재건성형의 길을 택한 후 힘든 일과 궂은 일을 마다하지 않고 자신이 결정한 길을 묵묵히 걸어가는 그의 모습은 요즘처럼 혼탁한 세상-이명박/박근혜 등의 대선 관련 볼쌍 사나운 모습, 열우당 탈당 후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하면서 정국 혼란에 일조하고 있는 열우당 탈당 세력들, 성(性)에 대해 무책임해지고 있는 우리 아이들, 한미 FTA 체결로 인한 국론분열, 결코 나아지지 않고 있는 서민들의 체감 경기 등-에서 한 줄기 빛이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라는 생각이 든다.

지난 글에서 한 줄 문장으로 표현했듯이 한성익 원장이야말로 실천하는 '천사'요, '보살'이라 해도 과언이 아닐 듯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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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람들의 입소문을 통해 인터넷 매체에까지 알려진 것이라면, 다시 말해서 기사 내용 그대로라면, 진짜 이 의사는 살아 있는 천사요 ,보살일세.

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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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만원짜리 성형수술’ 아시나요
성형외과 한성익씨‘안면장애 환자사랑’화제

사용자 삽입 이미지한 의사가 형편이 어려운 안면장애 환자들에게 거의 무료에 가까운 ‘만원’만 받고 수술을 해주고 있어 화제를 모으고 있다.

서울 강남에 성형외과를 운영하고 있는 한성익(46.사진)씨가 바로 그 사람이다.

최근 안면 장애가 세상의 관심을 끌기 시작한 것은 지난 연말 한 TV 프로그램에 ‘선풍기 아줌마’라고 불리던 한미옥씨가 소개되면서부터.

안면장애는 ‘사회적 죽음’이라고 불릴 만큼 환자들은 평생을 죄인처럼 숨어 지내는 경우가 많다. 주위로부터 ‘괴물’취급을 받는 등 그들에겐 삶 자체가 고통의 연속이다.

그동안 이들이 치료의 사각지대에서 방치되어 왔던 데에는 막대한 수술비와 더불어 성형외과 치료가 단지 미용을 위해서라는 사회적 몰이해 때문이다.

“형편이 어려운 이들을 도우는 것에 특별한 이유는 없습니다. 그저 사람들이 안쓰럽고, 인간으로서 그리고 의사로서 베풀어야 할 것들이 있다고 생각하는 것뿐이지요.”

독일 함부르크대학에서 안면 장애 연구를 전문적으로 해온 한성익 씨가 환자들의 무료 치료 에 나선 것은 6년 전인 1999년 무렵. 종합병원 재직 당시 수술을 담당했던 환자가 끼니조차 해결하기 힘들다는 사정을 듣고선 남몰래 병원비를 ‘깎아준’ 일이 계기가 되었다.

개인 병원을 차린 후 외국인 노동자들의 무료시술이 입소문을 타면서 사람들 사이에 그의 ‘존재’가 알려지기 시작했다. 이젠 해외에서도 그의 손길을 기다리는 사람들이 많다. 우연히 선배를 따라 몽골에 갔던 것이 인연이 되어 이제는 3개월마다 주기적으로 몽골로 의료 활동을 떠난다. 처음 몽골 국영방송을 통해 그의 선행이 알려졌을 때는 사람들이 한꺼번에 몰려들어 사흘 새 50명이 넘는 환자들을 수술하기도 했다.

사용자 삽입 이미지그는 ‘의료봉사’라는 말을 극구 사양한다. 돈 받고 치료해주는데 그것이 봉사랄 수 있느냐는 것이다. 성당이나 교회, 동사무소로부터 형편이 어려운 환자들을 소개받고 수술비로 환자들에게 1만원씩을 받는다. 환자들이 당당하게 돈을 내고 수술을 받았다는 마음을 갖게 하기 위해서다. 무료수술을 받는다는 부담감과 수치심에서 벗어나자 환자들이 예상외의 변화를 보였기 때문이다.

안면 장애 수술은 여러 차례에 걸쳐 진행되기 때문에 기간이 길고 통증 또한 커 환자들이 종종 버티지 못하고 도중에 포기하는 경우가 많다. 가장 힘들었던 수술은 올해 6월 몽골에서 온 자매에게 하나씩밖에 없던 귀를 시술할 때였다. 귀 수술을 해주겠다는 몽골인에게 사기를 당해 불법 체류자가 된 두 자매의 딱한 사정을 듣고 그는 귀를 ‘선물’했다. 그 중에서도 둘째의 귀를 만들기 위해 12시간의 대수술이 이어졌다. 첫째처럼 인공 귀를 만들어 단 것이 아니라 머리의 피부조직을 이식해 실제 귀처럼 만들었다.

“저는 일이 재밌어요. 사람들을 수술하고 도와주는 것이 즐겁습니다. 제 꿈이오? 안면 장애 환자들이 집밖으로 당당히 나올 수 있다면 더 바라는 것이 없습니다.”

올해 7월에는 미국에서 공부하고 있는 아들(17)과 함께 몽골을 찾아 12명의 환자들을 수술하고 왔다. 아버지를 따라 의사의 꿈을 키우고 있는 아들은 아버지의 전적인 지지자다.

환자들은 수술을 마치고 거울을 볼 때면 두 눈이 반짝거린다. 한쪽 눈 부위가 없어 얼굴 절반이 푹 꺼져있던 독일의 한 할머니는 수술을 마치고 끝내 눈물을 흘렸다. 사람들이 감동하고 기뻐하는 모습에 그는 행복을 느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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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계닷컴 두정아 기자 violin80@segye.com

2005.10.24 (월) 18:16