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래서 아직 세상은 살만하다.

[조선일보 장상진 기자]
“아줌마 안녕하세요? 돈가스 주세요.”
17일 낮 12시쯤 대구 동구 신기동 분식점 ‘김밥파는사람들’. 11살 미혜(가명)가 가게 문을 열고 뛰어들어오며 밝은 목소리로 소리쳤다. 식당 메뉴판에 적힌 돈가스의 가격은 3000원.
하지만 식사를 마친 미혜는 음식값 대신 계산대에 놓인 장부에 서툰 글씨로 싸인을 남긴 뒤 집으로 돌아갔다. 미혜는 구청에 등록된 ‘결식아동’이다.
대구 안심종합사회복지관에 등록된 결식아동은 모두 174명. 이들 중 25명이 미혜처럼 이 식당을 이용한다. 물론 포장도 가능하다. 결식아동 1인당 정부에서 지급받는 한끼 보조금은 1인당 2500원이지만, 여기서는 3500원을 넘지 않는 범위에서 어떤 음식이든 고를 수 있다.
복지관 측이 지난해 12월 어렵게 계약을 맺은 지정 급식소다. 최용원 사회복지사는 “2500원으로 고를 수 있는 메뉴도 제한적인데다 식사 대금도 월말이 되어서야 후불로 지급되기 때문에 선뜻 응해주는 식당이 없었다”며 “이틀간 주변 식당 20여 곳을 일일이 찾아다닌 끝에 겨우 한 곳을 구할 수 있었다”며 웃었다.
식당주인 김영민(48)씨는 “나도 아이들 키우는 입장에서 결식아동들을 조금이나마 돕고 싶어 급식계약을 맺게 됐다”며 “2500원대 음식은 대부분 면 종류라 기왕이면 아이들에게 밥을 먹이고 싶어 이익이 남지 않더라도 3000원대까지 주문을 받는다”고 말했다.
14일 오전 11시쯤 대구 안심 주공아파트. 배달원이 초인종을 누르자 혼자서 집을 지키던 시훈(가명·11)이가 쿵쾅거리며 달려와 문을 열었다. “와 도시락이다. 고맙습니다.” 시훈이의 얼굴이 환하게 펴졌다. 이날 배달된 메뉴는 만두탕수, 궁중떡볶이, 동그랑땡, 김치 등 4찬(饌)에 쇠고기무국. 인건비를 포함한 제조 원가는 1980원이다. 자원봉사자가 모두 독거노인 급식에 동원되는 복지관 사정상 배달도 업체가 책임지고 있다. 허겁지겁 식사를 마친 시훈이는 친구들이 모여있는 복지관 컴퓨터방으로 향했다.
도시락업체 푸른식품이 정부에서 받게 되는 도시락 1인분의 실수령액은 2500원에서 부가가치세 250원을 뺀 2250원. 이 업체는 독거노인을 대상으로 한 ‘어르신 도시락’도 동시에 공급하고 있다.
‘어르신 도시락’의 정부 지원금은 2000원. 실수령액은 1800원이다. 두 가지 도시락의 내용물은 같다. 결식아동 도시락 수익금으로 ‘어르신 도시락’의 손해를 메우는 셈이다.
이 업체 강민호 사장은 “시내 학원 등에서의 유료 급식을 통해서만 이익을 남길 뿐, 결식아동과 독거노인 도시락은 돈벌이로 생각하지 않는다”고 말했다. 그는 “지난 주에는 지산동의 한 복지관에서 결식아동 도시락 주문이 들어왔지만 여건이 허락치 않아 받아들이지 못했다”며 아쉬워했다.
그는 대신 “대형 도매시장에서 한 번에 장을 보는 대신 시간이 들더라도 공장과 생산지를 직접 찾아다니며 장을 보면 재료비를 20% 이상 절약할 수 있다”며 “아이들과 노인들에게 식사를 제공하는 다른 도시락업체에 참고가 됐으면 좋겠다”고 전했다.
대구지역에서 급식을 받고 있는 결식아동은 모두 1만2328명. 안심종합사회복지관 김중구 과장은 “여러 업체측의 배려로 결식아동들과 노인들에게 비교적 좋은 반응을 얻고 있다”며 “도시락을 배달해주는 자원봉사자가 더 늘어 정부 보조금이 모두 순수 재료비로 들어갈 수 있다면 더 나은 식사를 제공할 수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장상진기자 [블로그 바로가기 http://jhin.chosun.com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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